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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Sep 21. 2022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 사라진 시대의 아이콘

박정운의 먼 훗날에

일주일 동안의 바쁨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주말, 믿고 싶지 않은 충격적 소식에 널브러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가수 박정운의 사망 소식이었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리고 '왜'라는 한 글자만이 눈앞에서 맴돌았다. 아직 사회적 통념상으로도 노래를 얼마든지 부를 수 있는 젊은 나이인 데다, 시간이 좀 흐르기는 했지만 한 프로그램에 오랜만에 출연한 그를 보고 '여전하네'라는 미소를 지은 지가 어제 같은데.. 그가 떠나다니! 그것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그의 부고를 전하는 신문의 활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횡과 열을 잃고 자기들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혀 한숨도 새 나오지 않은 채 그렇게 한 시간여를 멍하니, 태풍의 전조로 바람이 제법 몰아치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음악방송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면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노래를 부른 가수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거였다. 요즘도 새로운 음반이 나오면 홍보차 이런저런 음악프로그램에 가수들이 직접 출연키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노래 외의 재능을 뽐내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러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서 대중들과의 소통을 이어가는 걸 보기도 한다.


고 박정운이 한창 활동을 했던 90년대의 사정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새 음반이 출시되면 가수는 직접 자신의 CD를 잔뜩 챙겨 매니저와 함께 방송국 순례를 하기 시작한다. 그곳이 메이저 방송의 본사가 즐비했던 여의도이든, 지방의 계열 방송사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오히려 지방에서 인기몰이를 해 서울로 치고 올라가는 유행의 물결이 제법 있었고, 오로지 방송에서 몇 번이 들려지느냐에 따라 노래의 인기를 추측하는 가늠자로 사용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이저 방송 계열사 음악 프로그램에 오래 몸을 담았던 내게는 가수, 그것도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가수들을 만날 수 있는 창구가 꽤나 크게 열려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난 그걸 매우 큰 축복이라 생각하고 살아갈 만큼, 노래를 잘 부르고 인성이 제대로라 소문이 난 가수를 만나기 전엔 항상 마음이 가을날 양털구름처럼 부풀어 오르곤 했었다. 고 박정운도 그중 한 가수였음은 물론이고.



살짝 낡은 듯 멋스러운 가죽재킷에 물이 조금 빠진 블랙 진, 그리고 수줍은 듯 주변을 밝히던 청춘의 미소! 그것이 가수 박정운을 처음 봤던 날,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온갖 말들을 끌어오고자 한 것과는 달리 별 언질 없이 미소만 짓고 있는 그에게 담당 프로듀서는 "박정운 씨, 이따가 프로그램할 때는 말 좀 하셔야 해요. 아무리 예쁘게 웃고 있어도 청취자는 모른다고요" 하며 농을 던졌다. 요즘처럼 보이는 라디오라도 있었으면 그의 아름다운 노래가 그 수줍은 미소에서 발현되는 것임을 대중들이 금방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앨범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소소한 신변잡기 같은 것들을 DJ와 나누고 난 다음, 당시 홍보하려 했던 신곡을 틀었다. 크게 힘들이지도 않고 내지르는 고음이 공간을 가르며 탄산수처럼 번져왔다. 3집 앨범의 대표곡 '먼 훗날에'였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누구랄 것도 없이 담당 PD와 나는 우리만이 아는 눈빛을 주고받았는데, 오랜 바이브에서 오는 '음.. 이건 히트야, 히트!"라는 신호였다.


 잊으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지우려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그 이름

 이별을 아쉬워하며

 나의 품에 안겨 고개 숙인 너

 가슴속 깊이 간직한 네게

 하고 싶었던 그 한마디 남겨둔 채

 돌아서는 슬픈 내 모습 뒤로

 울먹이는 너를 느끼며

 먼 훗날에 너를 다시 만나면

 사랑했다 말을 할 거야


 때로는 외로움 속에 때로는 아쉬움 속에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난 홀로 울고 말았지

 이별을 아쉬워하며

 나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너

 마음속 깊이 간직한 네게

 하고 싶었던 그 한마디 말 못 하고

 돌아서는 슬픈 내 모습 뒤로

 울먹이는 너를 느끼며

 먼 훗날에 너를 다시 만나면

 사랑했다 말을 할 거야


 돌아서는 슬픈 내 모습 뒤로

 울먹이는 너를 느끼며

 너는 나의 마음 알고 있을까

 너를 진정 사랑했다고

 워워 워워워 워워워 워워워워워

 먼 훗날에 너를 다시 만나면

 사랑했다 말을 할 거야/ 박정운 먼 훗날에 가사  


가수는 자신의 노래 같은 삶을 산다는 불문율이 가요계에는 전해져 온다. 물론 이것이 몇몇 가수들의 황망하거나 어이없는 죽음 뒤에 위로차 생겨났다는 건 웬만큼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고 박정운의 '먼 훗날에'를 듣는데, 가사 한 줄 한 줄이 어떤 생을 예고하고 있는 듯해서 자꾸만 멈춤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는 노래를 통해  '잊으려 애쓰고, 지우려 발버둥 쳐도 결코 잊히지 않는 가수, 혹은 사람' 이 되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렇게 먼 훗날에 자신의 노래를 사랑했던 이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도 당신들을 참 많이 사랑했다고 예의 그 수줍은 미소와 함께 마음을 전할 요량이었을지도.



받아들이기 힘든 가수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의 노래를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것, 그것뿐일 테다. 동시대를 산 누군가의 죽음은 그것이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는 아이콘일 때 더욱 뼈아프게 느껴진다. 1990년대를 사로잡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무장한 채 시대의 세련된 아이콘으로 거듭났던 박정운, 나를 포함해 그와 같은 시대를 함께 걸어왔던 사람들이라면 마치 우리의 일부가 사라지고, 살아온 시대의 한편이 저무는 것 같은 통증을 아주 오래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수는 가도 노래는 남는다', 감히 위로하지 마시라. 어쩌면 그것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옴이다. 가수와 함께 그의 노래들과 함께, 그리고 동시대의 우리 모두가 공유했던 숱한 시간들과 함께 고요하게 나이 들어가는 걸 팬들은 더 바라는 것이니. 박정운 그대, 아픔 없는 어느 곳에서 편히 잠 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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