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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Feb 24. 2023

일 년 중 단 하루의 호사, 대게 먹는 날

소식좌의 1식 일기 네 번째

위장은 참 희한하고도 정직한 장기다. 사춘기 시절엔 뭘 먹어도 먹는 대로 소화를 시키고, 또 돌아 앉으면 허기를 느끼게 만들더니(아마 생애 중 위가 맥시멈으로 늘어났을 때가 아닐까!) 소식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조금만 적정 량을 초과한다 싶어도 자꾸만 신호를 보내곤 한다. 하지만 그 신호가 트림이라는 게 문제다. 명치끝부터 올라오는 트림이 시작되면 '어이, 주인양반 이제 그만 좀 먹지?'라는 위장의 아우성 같아서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니까.


혹자는 트림하는 나를 보고 "혼자 뭐 맛있는 거 많이 먹었어요?" 하고 속 없는 소릴 하기도 하지만, 불편함을 동반한 트림이 올라오면 그 즉시 먹는 것을 멈추라는 경고이기에 배가 좀 덜 찼다 싶어도 수저를 놓아버린다. 간혹 눈앞에 놓인 음식이 좋아하는 음식일라 치면 괴로울 때도 있지만 '1일 1식'을 건강하게 고수하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기에 말이다.


이런 나도 일 년에 단 하루, 경고의 소리를 무시하고 '에라이!~~'는 마음으로 위장을 최대한 오픈하는 날이 있다. 바로 동해안의 명물 '대게'를 먹는 날이다. '대게'는 값도 값이지만 잡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제철에 살이 꽉 찬 대게를 먹으려면 일 년을 기다리는 수고로움도 감내를 해야 한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 대신, 해산물이라면 없어서 못 먹는 나이기에 겨울에서 봄 사이 우수절기가 다가올 무렵이면 '대게'를 먹을 생각에 마음마저 설레곤 한다.

 


사실 '대게'를 처음 맛본 건 '남편' 과의 연애시절이었다. 이전엔 그 어마어마한 가격 때문에 비슷하게 생겼으나 맛은 천지차이인 '홍게'로 대신하곤 했는데, 자신의 배우자가 될지도 모를 여인에게 꽤나 비싼 '대게'의 가격이 연애시절의 남편에겐 문제가 되지 않은 듯 보였다. 아무튼 그렇게 '대게'에 입문을 하고 나니, 사람이 참 간사하고, 입맛은 더 간사한지라 제법 먹을만했던 대체제 '홍게'가 눈에도 안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정경제를 생각하면 맛있다고 마음껏 먹는 건 안 될 일이었다. 내가 선호하는 박달대게는 대게 중에서도 그 가격이 더 비싸기에 말이다.


그래서 정한 규칙이 바로 '일 년에 하루, 대게 여행'이었다.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대게산지를 찾아 세 식구 모두 함께 오붓하게 대게를 먹으러 가는 여행이다. 여행이래 봤자 집을 나서서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한 다음 대게를 먹고 돌아오는 것이 다이지만, 이 하루는 내게 너무 소중한 스케줄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어쩌면 긴~긴 겨울 없는 입맛으로 고생깨나 해가며 퀭한 눈과 움푹 파인 볼을 해 가지고도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왔고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는 '대게가격'이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대게의 단맛'이 저장된 기억의 어느 부분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사람, 참.


역시 '박달대게'였다. 한 마리에 16만 원이나 하는 이 무시무시한 녀석을 호기롭게 3마리 고른 후 남편은

" 큰 거 한 마리 더 할래?"라는 말로 목소리에 힘을 주는 거였다. "아니, 그거 다 못 먹을 걸?"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대게라면 나도 '소식좌'가 아닌 '중식좌', 내지는 '대식좌'도 될 수 있다는 걸 남편도 익히 간파하고 있는 걸 알았음이다. 다른 음식으로 치환하자면 대게 다리 3개쯤에서 녹다운 돼야 할 먹부림이 몸통 부분으로 이어지고 게장으로 볶은밥 몇 숟갈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위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대게는 진짜 좋아하는 거 같아"라는 아이의 환호가 이어지는 것도 모르고 나는 박달대게의 차진 살을 꼭꼭 씹으며 길~게 음미했다. 더불어 내년에는 이보다 좀 더 실한 대게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가불도 성급하게 했음이다.


최대한 적게 먹고, 건강하다 검증된 음식을 먹는 것이 내 식사의 기조이고 그래서 주변인들로부터 '소식좌'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는 하나, 그렇다고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가끔 과식을 해도 괜찮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횟수에는 제한을 둔다. 내 경우엔 일 년에 단 하루인데, 그런 재미마저 없다면 살아가는 게 너무 심심한 일 아닐까.


박달대게를 배불리 먹은 다음, 푸른 동해바다가 눈앞에서 넘실대는 해맞이 광장의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산책을 하는 것이 어느덧 우리 가족의 2월 중 행사가 됐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더욱 몽환적인 그곳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사이좋게 걸어가는 아이와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도 뭉근히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몰래 참아온 트림을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내며, 이 단 하루의 행복이 보다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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