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의 색은 살짝 빛이 바랜 옅은 갈색이다. 먹다 남아 김이 빠진 콜라를 천천히 잔에 따를 때 햇빛을 받아 유리에 투영되는 색. 정확하게 세밀하게 표현할 수는 없어도 아무튼 내게 있어 '레트로'는 그런 색이다. 바래진 틈 사이로 아련한 그 무엇이 있어 눈길을 쉬 거두지 못하게 하는 불가항력의 힘이 거기엔 있다.
그래서 이즈음 다시 '레트로' 인가. 패션은 물론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저 먼먼 시간의 언덕을 향하는 발걸음이 심상치 않은 거 같다. 그곳 그 시간에 청춘을 지나온 나는 마음의 강물이 자주 일렁이고 가끔은 소란한 느낌이 드는 데, 이마저 반갑고 감사하다.
이런 시류를 지나칠 리 없는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이 모여 아마도 이 드라마를 궁리했을 것이다. 요즈음 특히 내 눈길을 잡아채고 있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야기다. 2021년을 사는 청춘남녀가 자신의 부모들의 아름다운 젊은 날로 '타임슬립' 하는 내용이 기본 골격이고 여기에 스릴러와 추리가 더해진 모양새다. 해서 화면의 전체적인 톤은 1987년에 맞춰 딱 내가 좋아하는 아스라한 '레트로'의 색채를 띤다.
세트나 CG라는 공간의 특성상 다소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빛바랜 옅은 갈색의 톤 위에 강렬한 그 시절의 색들이 더해져 '그리움'이라는 흉내 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색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23년을 살고 있는 한 청년이, 가족과 함께 이 드라마의 내용을 나누던 중, 장르의 특성상 범인은 누구일까 아빠한테 물었더니 제목만 듣고는 '송골매'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만큼 세대를 아우르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중인데, 드라마가 한창 진행 중이니 내용은 이쯤에서 지나치기로 하자.
다만 직업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내용도 내용이지만 ost들이 어떻게 장면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긴 하다. 이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어서 '1987' 년이라는 특정한 시대를 가장 잘 나타내고 확정할 수 있는 노래들에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어쩌면 이 드라마의 음악감독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사랑의 세레나데로 수시로 흘러나오는 노래 '스잔'의 첫 구절, 저 유명한 '스잔, 찬 바람이 부는데...'에서 나는 허리가 꺾이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스잔 찬바람이 부는데, 스잔 땅거미가 지는데 너는 지금 어디서 외로이, 내 곁에 오지를 않니 스잔 보고 싶은 이 마음, 스잔 너는 알고 있잖니 그날의 오해는 버리고, 내 곁에 돌아와 주렴 스잔 난 너를 사랑해, 후회 없이 난 너를 사랑해 스잔 잊을 수 없는 스잔, 이 생명보다 더 소중한 스잔 스잔 찬바람이 부는데, 스잔 땅거미가 지는데 너는 지금 어디서 외로이, 내 곁에 오지를 않니 <간주> 스잔 난 너를 사랑해, 후회 없이 난 너를 사랑해 스잔 잊을 수 없는 스잔, 이 생명보다 더 소중한 스잔 스잔 찬바람이 부는데, 스잔 땅거미가 지는데 너는 지금 어디서 외로이, 내 곁에 오지를 않니/ 김승진, <스잔> 가사
1985년에 김승진이라는 가수가 발표해 히트를 기록한 곡이다. 한 없이 부드럽고 또한 청량하고 순수하다. 곡이 그렇고, 가사가 그렇다. 이곡을 부르는 가수가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고등학생가수라는 것과 풋풋함이 묻어나는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후광효과'로 작용했다.
거기에다 노래에서 그토록 애타게 부르는 '스잔'이 대체 누구일까라는 물음도 이 곡의 히트에 한몫을 했다면 했을 것이다. 요즘처럼 가수에 대한 모든 것이 곡 발표와 함께 공개되는 세상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노래가 대중에 전해지고 인기를 얻을 무렵, 믿기 어렵겠지만 상이하게도 대학가에선 민주화를 갈망하며 항상 시위가 있었고 사흘이 멀다 하고 최루탄의 매운 기운이 도서관에까지 스며들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간절함의 뒤꼍엔 이런 사랑의 달콤함도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랑, 사랑으로 가슴 아픈 청춘, 그리고 외로움. 이런 것들이 아무리 혼돈과 뜨거움의 시대라 한들 완전하게 사라질 수 있으랴. 사랑은 불멸이며 불확실성을 지닌 유일무이한 어떤 것이므로.
아마도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는 '노천 계단'에 앉아, 때로는 매캐한 내음으로 뒤덮인 6월의 푸른 소나무 아래에 숨어들어 몰래몰래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를 들었던 이유가.
대놓고 사랑할 수도 없는 치열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이었다. 그 뒤꼍에 앉아 아주 잠깐씩 부채의 마음을 가진 채 머물며 듣던 노래, 바로 그 노래가 '스잔'이었고. 그런데 예의 무해한 곡조와 가사 그대로 1987년을 무대로 한 드라마를 물들이고 있는 걸 보니 미안하게도 다시 마음이 끝 간 데 없이 몽글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사랑이 다시 올리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왜 '1987' 년이고, 하필이면 이 노래 '스잔' 이어야만 했을까. 역사가 스포이기는 하지만 '군부독재'의 시대를 마감시키는 거대한 물결이 일고 그 물결의 끝에는 엄중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래서 눌러 놓았거나 숨겨 놓았던 '청춘의 사랑'을 조금씩은 이야기해도 된다는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노래의 쓰임새가 꼭 그랬으면 좋겠다.
내게도 드라마에서처럼 근사한 '타임머신'이 주어지고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어느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나는 '스잔'을 몰래몰래 듣던 대학생으로 회귀하고 싶을까? 어쩌면 그 시절 누군가의 '스잔'이었을지도 모를 나에게 가만히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