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구월 초입이 되면 무엇에 홀린 듯 이 시를 꺼내 읽는 나 자신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가 많이 읽히지 않는 세상을 살면서, 아직도 시의 가슴을 보듬고 사는 내가 좀 구닥다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썩, 대견한 마음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은 살아있는 내 기억력에 괜찮다, 괜찮다.. 되뇌게도 된다.
류시화의 이 시, ‘구월의 이틀’을 예외 없이 생각나게 만든 건 누가 뭐래도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몇 뼘은 높아져서 위풍도 당당해진 가을 하늘 이리라.
이 시를 읽는 시간이 9월의 어느 하루 고요함에 젖어드는 시간이면 더욱 좋겠다. 조금씩 소리 내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가 인도하는 소나무 숲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 잔잔하지만 오래도록 퍼지는 솔 향을 맡게 되기도 하고, 양치류의 싱싱한 내력들에 귀를 기울이며 어지러운 시간을 잊기도 한다.
아무리 비문학적인 문장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이끌어간다 해도, 오솔길 아래 숨어들어 구월의 이틀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또 그렇게 시의 비를 맞으며 끄떡하지 않을 스스로에게 ‘장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이렇게 다시 9월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시인이 소담하게 펼쳐 놓은 ‘구월의 이틀’ 이 여전히 건재해서 감사하다.
감염병과 태풍과, 하염없는 고독이 만들어 놓은 슬픔 속에서도, 시가 준비해 놓은 우리들의 심리적 ‘퀘 렌시아’ , ‘구월의 이틀 그 숲’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놓고 쉬어도 좋을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