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굽지 않은 언어로 말 걸기

시가 내 시간을 흔들었다 2 곽재구/나무- 연화리 시편 1

by 초린혜원

숲 속에는

내가 잘 아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를 만나러

날마다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키 큰 나무와

제일 키 작은 나무에게

나는 차례로 인사를 합니다

먼 훗날 당신도

이 숲길로 오겠지요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

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言語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곽재구/ 나무- 연화리 시편 1

이 시를 읽으며 문득 시인의 연화리가 어디인지 몹시도 궁금해진 적이 있었다. 호기심을 발동시켜 며칠이 걸리더라도 찾아 가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이름으로 유추해보건대 늦봄이나 여름쯤엔 연꽃이 만발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조차 잡아놓을 작은 저수지가 마을 한가운데 있고,

뒤쪽으로는 푸른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이,

마을의 기운을 늘~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곳일 거라 그저 상상하고 혼자 그려보았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목적도 없이 떠나 이곳저곳 헤매는 것이 취미인 내가 말이다.


오늘 다시 이 ‘연화리 시편 1’을 읽어보니, 그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등이 굽지 않은 언어’와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을 지닌

나무들은 오직 그 숲에만 있으므로.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시인이 언젠가 초록의 몸으로 온전히 들어가 나무 한 그루, 한그루에다 다정하게 눈 맞춤을 하며 얼싸안았을 그 숲은 오직 연화리, 그곳에만 있어야 했으므로, 혹은 어쩌면 아직은 시인이 손꼽아 기다리는 ‘먼 훗날 당신’ 이 될 자신이, 안타깝지만 내게는 없어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곽재구 시인의 ‘연화리, 그 나무들과 숲’ 은 매양 그 자리에서 오늘도 숲으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 들어와 스스로 숲이 되고자 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등이 굽지 않은 언어’로, 제일 키 작은 나무와 제일 키 큰 나무에게 구별 없이 인사할 수 있는 사람, 나무들의 등에 기대어 노래하며 숲을 울리는 합창을 할 수 있는 사람, 나무가 나무에게 전하는 마음을 언제든 자신의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혹 그런 분이 계시다면 바로 지금 연화리로 길 떠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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