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마음

시인이기에 가능한,

by 초린혜원

자기 전 꼭~ 지키는 루틴이 하나 있다. 굉장히 몸이 피곤하거나, 피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앞에 놓이지 않은 다음엔 반드시 행하는 루틴이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보니, 모든 게 처음인 일들에 치여 나만의 독서시간을 마음만큼 가질 수 없기에 생겨난 궁여지책이었다. 처음 시작은. 그런데 어느새 25년 이상을 흘러오다 보니, 이 루틴은 내 삶을 지켜주기 위해 어두운 곳에서 더 빛나며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됐다.


이 독서 루틴의 시간은 길어야 30분 정도. 대개는 15분에서 20분을 넘지 않는다. 때문에 해가 시간의 지배자일 때 읽는 책들의 맛과는 확연히 다른 맛으로 독서의 미각을 일깨우고는 한다. 스스로 정해 놓은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문장이 현란하거나 많은 생각을 요하는 책들은 배제한다. 글에 미혹돼 가뜩이나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 잘 깨지곤 하는 얄팍한 생체리듬 때문이다.



해서, 주로 가볍게 책장을 넘겨갈 수 있는 산문집이나, 한 줄로 생각을 요약할 수 있는 시집이 선택된다. 요 며칠 박성우 시인의 책 '마음 곁에 두는 마음'을 읽었다. 항상 시인들의 에세이를 즐겨 읽기도 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의 심플하면서도 포근한 그림이 표지를 채우고 있어 더 눈에 띈 책이라고나 할까. 표지그림 하나로 책의 내용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림을 그리는 이가 책을 쓴 이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는 뜻일 게다.


책은 내 예측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소설가들이 쓴 에세이는 그들의 소설 속 질료와 닮아 있고, 시인의 에세이는 시인이 시에 담아내고자 하는 세계와 그 결을 같이 한다. 이 책도 딱 시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어떤 유, 무형의 우주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 글들로 가득 차 있다.


시인답게 생물은 물론이고 무생물에서조차 마음의 결을 느끼고 읽는다. 그의 마음이 무한대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읽은 것들을, 담담히 말을 쏙 빼닮은 글로 차분히 옮겼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사적이고 한편으론 미미한 기록일 수도 있겠지만, 자극적 요소 하나 없이 자분자분하게 흘러가는 매력이 이 책에는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어느새, 시인의 마음 곁에 조용히 스며든 내 마음이 보인다.



시인은 세상 모든 것의 마음을 언어로 읽어내는 사람이다. 그것도 자신의 고유한 눈길을 담뿍 담아낸 언어로.
오후 세시에 만나게 되는 고양이에게도, 흐르는 강물이나, 버들가지에서도. 하늘을 나는 새나, 내리는 흰 눈에서도 시인은 그들의 마음을 보려 애쓴다. 그 애씀의 순간들이 모여 하루의 기록이 되고, 기록들은 시인의 발자국을 따라 이렇게 한 권의 다정한 이력으로 남았다.

시인이 쓴 에세이는 사물의 본질, 그 진득함에 보다 집중한다. 참된 시인이 되기란 힘들지언정, 시인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어디 그렇게 어렵겠는가. 이 책을 읽다 보니 마냥 잠들어 있는 우리 마음속, 그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될 일 같다. 시인으로 사는 일이란.

박성우 / 마음 곁에 두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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