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도 실력 맞던데요?

짧은 글, 그보다 조금 긴 생각-우리 동네 치과의사 쌤

by 초린혜원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나의 치아 이야기다. 타고나기를 부실하게 타고난 탓도 있지만, 제대로 잘 관리를 해주지도 못하는 주인을 만난 나의 치아는, 너무 불쌍하게도 하루가 다르게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서둘러 치료를 맡아줄 치과를 찾아 나서야 했다.


비 전문적인 소견으로도 상당한 비용과 기간이 소요될 것임을 말해주는 상태로 치과를 찾는다는 건, 보통의 사람보다 조금 더 큰 강도의 두려움이 동반된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내게는.


일을 그만두자,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 '빈 둥지 증후군' 은 생각보다 더 깊숙이 내 일상을 침투해 여기저기를 갉아먹었고, 모든 것에 심드렁해지면서 마음도 몸도 병들었는데 그중 젤 큰 것이 불안증세였고, 두 번째가 바로 치아손상이었다.


불안증세는 그리 심각하지는 않아서 몇 번의 상담과 대증요법으로 치료를 받으며 상당히 호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치아손상은 막연한 치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몰라도 선뜻 병원을 찾아 나서기가 힘들어 차일피일 미루다 흔히 하는 말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대도시, 그중에서도 꽤나 번화한 동네에 살고 있는 덕분에 우리 동네에도 치과병원이 손으로 다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내게 맞춤한 치과를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이웃들의 경험치에서 나온 입소문들과 웹사이트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둘러보면서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꽤나 골치가 아파, 머리를 식히려고 여기저기 치과병원을 중심으로 동네를 휘~휘 둘러보았다. 저마다 전문 진료과목을 부각한 간판이 눈에 띈다. 어느 곳은 임플란트를 잘하고, 또 어느 곳은 교정에 전문이며, 특히 사랑니 발치를 당일에 너끈히 해 준다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내 마음을 일시에 빼앗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 집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발길을 옮겨가던 중이었다. 아이가 중학교 때 다니던 영어 학원이네! 하고 눈길을 돌리는 순간 '자연치아는 살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입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마치 그곳에 서서 나를 오래 기다려 온 것처럼 그 문구가 그야말로 내 가슴속으로 한 순간에 꽂혀버린 거다. 10월 중순이었고, 적당히 농익은 가을 햇살을 받은 입간판은 모래 속의 사금파리처럼 그렇게 반짝, 자신의 존재감을 내게 드러내면서 다가왔다. 모든 치아를 다: 바르게 치료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병원의 이름과 함께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내 치아치료는 시작됐다. 나이가 들수록 치아의 손상 정도에도 가속도가 붙지만, 병증에 대한 가없는 불안과 두려움도 이와 평행선을 이룬다. 상담을 위해 CT를 찍고 앉아있는데, 평소 냉정하기 그지없는 나도 손에 땀이 나는 것이다. 불안하고 어색한 마음을 겨우겨우 누르며 있다가,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두 번 놀랐다. 우선은 너무 동안이어서 놀랐고, 말투가 나긋나긋해서 또 한 번 놀란 거다. 세상에, 마상에! 이리도 젊고 상냥한 남자 의사분이라니.


한 눈에도 너무 앳돼 보이는 동안의 의사는, 조곤조곤 현재의 치아 상황과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살아오는 동안, 이러한 장면에서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주 친절한 말투였다. 갓 잡아 올린 푸른 등의 물고기처럼 신선하면서도 가지런한 말투. 나는 이런 말투를 병원이라는 곳에서 접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아스라해졌다. 다정하면서도 전문성을 잃지 않는 말투, 낮지만 단단한 어조로 얘기하기에 환자가 신뢰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화기법. '뭐지? 이 선생님은?'



병원 대기실에 빼곡하게 적혀있던 그의 다양한 이력도 이력이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어투의 말 한마디, 그리고 몇 개 되지는 않겠지만 '자연치아'를 최대한 살려보는 치료를 하겠다는 그의 의사로서의 다짐은, 내게도 고스란히 신뢰로 전해졌다. 그리고 한번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치료는 결과가 돼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상당한 난이도의 수술과 치료를 이어받았는데, 동일한 처치를 다른 병원에서 받았던 사람들에 비해 고통의 크기가 적음은 물론이고 붓기도 거의 없는 편이어서 감사했다. 분명 나의 막연한 불안을 잠재운 친절함도 이런 상황에 한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올해 중반, 혹여 늦어지면 후반까지 계속 이 치료의 인연을 이어가야 할 것 같은데, 경과도 다행히 아주 좋은 편이라 전해 들었다.


그동안 수 차례 계속되는 치료과정 동안 이 의사 선생님이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너무 잘 참으셨어요" " 혹시라도 불편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이 두 마디의 말을 그저 예의 바르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치료 상황에서 내 상태는 얼마나 호전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라뽀 형성' 아닐까?


병원을 찾는 이들은 이미 몸의 어느 곳이 고장 난 상태이고 이 고장 난 상태의 병증은 심리적인 위축을 불러오기 때문에 환자의 신분으로 병원을 찾을 때는 사람에 따라 차이야 있겠지만, 마음이 어느 정도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다들 아는 바대로 치과는 여기에다 더해 그 엄청난 기계음들 때문에 선험적인 공포감을 안고 가야 하는 병원이다 보니, 의사의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중요한 거라 여겨진다.


나는 정말 운 좋게도 이 친절하고도 확신에 차 있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치아도 생길 테고, 다 죽어가던 치아도 몇 개 살리면서 몇 달 후, 온전히 회복한 채로 환하게 웃을 날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날 내게 다가왔던 문구는 생각하면 할수록 신의 한 수가 됐고.


지금까지의 치료과정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친절도 실력의 한 부분이라는 거였다. 많은 병원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전문성에 반비례한 조금은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의사를 만나 불편한 경험을 해 본 적도 있기에 말이다. 그런 불편함은 때때로 그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신뢰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친절이란 최고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자의 상한 마음을 병과 함께 어루만지겠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화려한 수사로 위로를 하거나 설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이란 눈빛과 말투에 자연스레 투영되고 그건 곧바로 환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친절한 의사 선생님과, 역시 이에 상응하는 친절로 무장한 병원 스태프들 덕분에 예고된 수술과 치료의 길고도 복잡한 단계를 차근차근 잘~따라갈 용기가 생겼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우려했던 심리적 불안증세를 첫 방문 이후 한 번도 겪지 않았고, 그동안 왜 치료를 미뤘을까 하는, 후회마저 했다는 것이다. 치과라면 죽어도 가기 싫어했던 내게는 실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불신과 신뢰는 그야말로 한 끗 차이다. 환자가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그 병원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들어설 수 있게끔 인도한 의사, 그가 바로 명의다. 기술과 의학적인 것에 대한 건 문외한이므로 차마 거론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환자를 대함에 있어 진정성으로 대하고 환자로 하여금 그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거기에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안도감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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