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눈길을 끈 기사가 하나 있었다. 어느 작가의(본인 말로는 거의 무명에 가깝다고 했다) 대학시절 문학상 당선 작을 표절한, 아니 이건 표절이 아니라 그대로 가져다 쓴 소설로 몇 개의 문학상을 휩쓴 한 사람의 얘기였다.
한 때 문인을 꿈꿨던 사람으로 엄청난 분노가 느껴져 몸안의 세포 하나하나가 부들부들 떨리는 경험을 했다. 남의 작품을 버젓이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 놀라운, 아니 천인공노할 이 배포는 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잠시 나의 대학시절을 회상한다. 대학 4학년 봄이었다. 백목련이 처연하게 떨어지는 캠퍼스를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한 친구가 헐레벌떡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 것이 뭔가 큰일이 난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너 이거 함 봐봐!"
친구는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을 정도로 큰 소리에 감정을 한껏 실어 소리쳤다.
부끄러운 마음 반,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맘 반으로 얼른 친구가 건넨 대학신문을 받아 들고는 친구가 얘기하는 면을 펼쳐보았다. 그 순간의 놀람과 이어지던 경악스러움은 요즘도 가끔 생각 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신문 한 면에 특집기사로 실린 수필, 그건 바로 내가 고등학교 때 썼던 글이었다. 제목부터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가는데 토씨 하나 틀린 곳 없이 완벽하게 내 글이었다. 다만 기고한 사람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기고자는 바로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같은 대학 다른 과로 진학을 한 친구였다.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황당하고도 놀란 가슴은 쉬 진정이 되질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문집에 실은 글이었다. 시만 쓰던 내게 담임 선생님이 긴 글들도 써야 글이 는다고 권유하셔서 쓴 글이었다.
당시, 좋은 반응이 있었고, 시가 아닌 수필로 학교의 문학상을 탄 글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글을, 그것도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친구가 쓴 글을, 버젓이 자기 글로 해서 기고를 하다니! 이런 경우를 두고 말문이 막힌다고 하는 거겠지.
심지어 나는 대학신문사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니 다른 어떤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학교신문을 보리라는 건 삼척동자도 코웃음을 치며 알 일 아니던가. 당장 그 친구를 만나야 했다. 학과 사무실로 올라가 메모를 남겼다.
내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으며, 이런 비양심적인 행위는 아무리 동창이라고 해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당장 눈물이라도 흘리며 달려올 줄 알았던 그 친구는 메모를 남긴 지 거의 열흘이나 지나,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마디 하는 거였다.
"미안해, 나는 네 글이 하도 좋아서 그냥"
꽤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신설고등학교의 특성상 1회 졸업생이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우리는 같은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않았던가!, 가끔 문과대 수업을 들으러 갈 때면 함께 커피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곤 하던 친구여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변명도 사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에 대해, 나름의 도덕관에 오류가 날 정도로 혼자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허무한 진지함이었지만. 물론 그 이후 나는 이 친구를 완전히 내 삶에서 배제해 버렸고, 이후 동창회에서 잠시 만났을 때도 철저히 무시해 버렸다.
본인의 삶을 지우고 다른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을 우리는 '리플리 증후군'에 갇힌 사람들이라 인지한다.
'자신의 불행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컬음이다.
나는 아주 오래전 알랭 들롱이 주연했던 명작, '태양은 가득히'에서 이 리플리의 존재를 알게 됐고, 저렇게 사는 삶은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생각했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가끔은 거짓말과 허상에 자신을 매몰시키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타인의 삶으로 꾸며 살지는 못한다. 우리 인간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든 간에 애초에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나아가 사랑하도록 끊임없이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리플리 증후군'의 사람들은 좀 다르다. 아마 내 글을 훔쳐 게재한 친구도,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소설을 훔쳐 자기 것인 양 하는 인간도, 필시 이 부류가 아니었을까? 훔쳤다는 소설의 원문을 읽어보니 한 눈에도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마 훔친 자는 이 약관의 작가가 너무 부러웠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부러움은 부러움으로 끝나야 하는데, 자신의 재능 없음을 자각하고 더 노력하기보다, 그는 본인의 삶을 지워버리고 속속들이 다른 사람이 된 착각 속에 빠지는 우를 범했다. 이제 그 결과는 가혹하고도 무거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말 치졸한 마음으로 작품을 표절하거나 베껴서 스스로의 빈 곳을 채우고자 해도 그 작품 속에 진하게 밴 한 사람이 지난하게 걸어온 삶이나, 그 테두리 안에서 형성된 고유의 정신, 그 축적의 내밀한 더께는 감히 베낄 수도 흉내 낼 수도 없음이다.
표절, 아니 작품을 그대로 베껴낸 것을 가려내지 못한 시스템도 너무 허무하고,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인 양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여전함에 또한 허망하다.
눈이 귀한 이 곳에 눈발이 흩날린다. 얼마나 내릴진 모르겠지만 이 눈으로 거짓되고 추한 것들이 잠시나마 덮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