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불면증

내 오래된 불면증에 관한 소고

by 초린혜원

또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불면의 밤이 지속된 지 일주일째, 의식은 몽롱하고 가슴께는 뻐근하다.
몹쓸 놈의 불면증이 도진 게 분명했다.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그 흔하다는 갱년기 증상. 이를테면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열이 차 오르는 것, 식은땀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것. 우울감이 밀려와 한없이 몸이 가라앉고 식욕이 무한해지거나, 반대로 無식욕이 되는 것. 의욕상실로 집 밖 출입을 하지 않게 되는 것, 등등의 전형적인 증상을 겪지 않아 참 다행이다.. 하고 마음을 놓으려 할 때 불면증이 찾아왔다. 오라고 기별을 넣은 적도 없건만, 도둑처럼 능구렁이처럼 담장을 넘어 그렇게.

불면의 밤이 몇 년씩 계속되다 보면 몰라보게 살이 내리고, 동공이 흐릿해지는 신체적 변화 외에도 극도로 쇠약해진 정신상태로 인해 일상의 기본이 흐트러지고 급기야 무너지는 상황을 맞게 되기도 한다.

내 경우엔 아이의 고등학교 시절, 특히 입시 준비와 맞물리다 보니 불면증으로 인한 괴로움은 배가 되었고, 매일매일이 가시밭길을 걷는 고통이었다.

"수험생은 아침밥을 먹느냐, 안 먹느냐에 따라 수능점수가 달라진대"

아이의 입장에선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일하는 엄마 그것도 거의 매일을 불면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산 송장처럼 살아가는 엄마에게, 아이의 이 한 마디는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을 무렵 새벽밥을 짓기 위해 맞춰둔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가 다반사였고. 행여 공부에 지장을 줄까,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몸과 언어를 거짓의 갑옷으로 단단히 채비하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었으니.

이런 이유로 아이를 등교시키고 그날 방송될 원고를 쓰는 오전 9시 무렵은 항상 비몽사몽일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그 와중에도 기사를 일일이 검색하고 오프닝멘트를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던 오래 전의 나에게 삼가 경의를 표한다.

꼬박 3년을 그렇게 불면증과의 전쟁을 치렀던 거 같다. 나라고 왜 이를 물리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겠는가! 먹지도 못하는 우유를 미지근하게 데워 마셔보기도 하고, 요가나 달리기로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 잠을 청하거나 커피를 아예 끊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 번 시작된 불면은 야속하게도 또 다른 불면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현저히 삶의 질을 떨어뜨려버렸다.

글 한 줄 읽는 것도 힘들 정도로 정신마저 피폐해지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란 표현이 딱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끝이 나지 않을 거 같던 무적의 내 불면증은 아이가 서울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수면시간이 늘어나더니 뒤척임도 거짓말처럼 현저히 줄어들게 됐고.

워낙에 수면습관이 좋지 않은 나이긴 하다. 언제나 쉬 잠들지 못하고, 하루도 꿈을 꾸지 않는 날이 없는가 하면, 여행지에서도 편히 잠을 이룬 적이 전무하다. 오로지 내 집, 내 침대 위에서만 얕은 잠이라도 겨우 편하게 이루는 편이니까.

의사인 친구에게 수면제 처방이라도 받을까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의사이기 전에 친구여서 한 얘기겠지만
"어지간하면 운동요법으로 치료하면 어떨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나아지긴 했다 해도 오래된 병증은 내 몸 어딘가에 숨어있다, 교묘하게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불현듯 마음이 심란해질 때, 해결되지 않을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우울이 시간의 작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올 때. 불면증은 와락, 달려든다.

서서히 동터오는 새벽하늘의 빛은 시린 푸름이다. 푸른색 중에 가장 신선한 푸름이나, 다시 불면으로 지새운 오늘의 내 육신에겐 더없이 냉혹한 푸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저 낮동안 잠시라도 졸 수 있기를, 상대방의 의사는 아랑곳 않고 자꾸 사귀자고 덤벼드는 불면증에게 호통이라도 쳐, 내 영역 밖으로 내보내기를,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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