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5개월, 뒤늦은 욕망

글 좀 잘 쓰고 싶어서

by 초린혜원

※커버 이미지 pixabay


'생각 속에 누워만 있는 언어들을 깨워 일으키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어딘가에 어지럽게 메모된 순간의 감정, 그 부스러기들도 모아 가지런하게 정리를 하고 싶다.'는 혼자만의 순진한 생각으로 브런치 입문을 하게 됐다. 물론 이전에 먼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의 자극도 조금은 작용했음을 부인하지는 않으련다. 라디오 방송작가로 꽤 긴 세월, 글이란 걸 쓰며 밥벌이를 해 왔지만 방송글이란 모름지기 말에 가장 최적화된 일상 언어를 골라 최대한 길지 않은 호흡으로 진행자의 어법에 맞는 글을 써야 "자네, 글 제법 잘 쓰는데?"라는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전생에도 방송작가였는지 어쨌는지, 여러 방송국을 옮겨 다니며 짧지 않은 경력단절이 중간에 있었음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글을 쓰는 작가로 평가를 받았었다. 물론 글 외에 작가가 갖추어야 할 재량 같은 것, 이를테면 맞춤한 출연자들을 잘 찾아내서 섭외하는 능력(나는 음악방송 작가였기에 주로 가수들이 해당됐다)이라든가, 프로듀서가 척, 하면 착! 하고 맞받아칠 수 있는 약간의 능글맞음, 특집이라는 이름하에 어마어마한 분량을 요구하는 원고 같은 것들도 툴툴대면서, 척척 해내는 내가 가끔은 신기하기도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특유의 내향적 기질이 정글 같은 방송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보면 참아내지 않는 강건한 성정 때문에 쉬 적응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 또한 만만치 않게 받았기에 말이다.


아무튼 그런 세월을 20년 이상 보내고 '번아웃'에 시달리며 더 이상은 물을 길어 올릴 수 없는 마른 샘이 돼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과감히 일을 그만두게 된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경력이 아깝지 않아?

왜 그만둬.?"

"간절하지 않구나. 쓰는 삶이"

"조금만 더 버텨주시지. 선배"


별별 이야기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물론 게 중에 몇은 맞고, 몇은 틀렸다. 후배들을 위해 최고참 작가였던 내가 얼마나 더 견뎌주느냐에 따라 그들의 갈 길이 약간은 편해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게 가장 절실했던 건 제대로 쓰는 '진짜 작가'의 타이틀이었다. 방송작가도 매우 훌륭한 '쓰는 사람'이지만, 文靑 시절 그토록 갈망하며 쓰고자 했던 글들, 그 글을 언젠가는 꼭 쓰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고 몇 달 동안은 일부러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지 않았다. 행여라도 영향을 받을까, 쓰고 싶은 글들만 쓰리라는 결심이 무뎌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글에만 집중한 5개월쯤이 지난 이후부터 다른 이들의 주옥같은 글들을 하나씩 찾아 읽으며, 결심은 허무한 절망감으로 바뀌어버렸다. 그것도 매우 깊은 절망감. 훌륭한 작가들, 작품들이 넘쳐나고 제 각각의 개성으로 사물을, 사실을, 그리고 사람을 읽어내는 시선들은 풍부하고도 넓었다.


광활한 브런치의 영토에서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린 성주들, 영주들, 그 틈에 겨우 밭 한떼기 소작하고자 제대로 된 괭이나 호미도 가지지 않고 움츠려 있는 나는 가난한 소작농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이 경작지가 내 것이 맞는지 아닌지, 맞다면 과연 어떤 씨앗을 뿌려 수확을 해야 할 것인지 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했다.


나는 어떻게 전장 같은, 때로는 온갖 나무들이 살아남고자 애쓰는 원시림 같은 이곳에서 죽지 않고, 끝끝내 사라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을까.' 내가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쓰고 싶은 시와 노랫말 이야기, 엄마와의 추억을 음식으로 소박하게 그려내기, 딸에게 건네는 사소한 마음 같은 것들은 얼어붙은 영역이었나 보다. 이 곳에선.' 좌절의 시간이 때론 새벽 여명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왜 이제와서야 쓰고자 하는 동력에 채찍질을 해대는가. 세상엔 발간된 책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작가들이 이미 넘쳐난다는 데, 굳이 나까지 그 대열에 합류해야만 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벽을 쌓아 올린다.

고심 고심 끝에, 긴 고민과 질문 끝에 써진 글일지라도, 읽는 이들은 아무런 장애조차 느끼지 않고 술~ 술 읽어내게 만들 순 없을까. 내 안에 반짝이는 별들의 말을 모아 은하수로 글밭에 흐르게 할 순 없을까.


'브런치' 생활 5개월여를 넘기면서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 이 플랫폼에 발을 들일 때부터 내가 쓰고 싶은 글, 쓰고자 하는 방향성이 올바른 글들을 집필하려 마음먹었는데,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제대로 된 길인가, 어쭙잖은 치기로 비틀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를 속이며 적당히 합리화된 길을 택한 것은 아닌가 하고. 이런 고민은 몇 개의 글이 다음 메인에 오르고 조회수가 늘어날수록 더 심화되기만 한다.(구독자수는 여전히 일천하지만)


어느 작가분이 브런치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쓴 글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됐는데, 너무 공감을 했다. 그의 고민이 곧 내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는 어쩌면 비주류로 여겨질 영역의 글을 쓰다 보니,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어떤 피드백이 잘 생겨나질 않아서 힘이 빠지고 스스로를 질책하게 되는 시간들이 그분에겐 많았던 거 같다.


'직장인의 자기 계발''결혼과 육아''인생 극복기''일상 탐구' 이런 소재들이 주로 각광을 받다 보니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 물론 지구인의 수만큼 그들이 지닌 이야기도 다양하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함이니 이 작가분의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뇌'가 얼마나 컸을지 가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고민은 날로 깊고 마땅한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아 두려울 뿐이다. 브런치 올챙이 시절 '안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도전한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당선으로 이 두려움이 아주 약간 가시기는 했지만(물론 총 43편의 드라마를 오랜 시간을 투자해 보고 꼼꼼히 써서 올린 리뷰였다) 여전히 굶주림으로 하울링만 하며 갈 곳을 찾아 헤매는 한 마리 승냥이 같다. 오늘도 쓰기 위해 모니터에 한 자 한 자 생각을 가다듬은 언어들을 옮기고 있는 나 자신이.



자칭 타칭 '동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산다. 그렇게 '작가님', 이라 불리는 것이 가끔은 부끄럽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생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기도 하고. 동네에 글을 쓰는 사람 한 명쯤은 살고 있어도 괜찮은 일이고, 어찌 됐든 글을 쓰는 것으로 업을 삼아 20년 이상 일을 했으니,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따위에서는 좀 더 자유로워져도 될 것이다. 오만함이 아닌 자존의 옷을 입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란 애초부터 쉬울 리는 없지만 말이다.


가치평가의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이 될 때 드는 괴로움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밧줄이 될 수도 있으니 꾸준히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하는 것만은 잊지 않아야겠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신춘문예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후배의 뭉근함과 무모하리만치 끈질긴 노력이 내게 전해져, 이미 찬사가 된 지 오래다. 아주 가끔은 그 찬사를 빌려와 나를 다독여야겠다. 욕망의 크기가 커질수록, 한계에 부딪히고 절망을 안고 스러지는 날도 잦아졌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뒤늦은 욕망과 열심을 부리는 나에게 내처 외친다.


"야, 정신 차려. 네 주제를 정확히 알라고, 너를 잘 좀 꿰뚫어 보란 말이야. 그래야 뭐라도 쓰게 된다고!"


함께 읽고 쓰는 세상을, 무시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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