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는 봉합될 수 있을까?

영화, '오직 사랑뿐'을 보며 든 생각

by 초린혜원

오늘도 신문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Stop Asian Hate!' 기사를 분노에 차, 떨리는 가슴으로 읽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의문 하나, 신이 계시다면 인종, 혹은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 인종과 국가를 혐오하고 군림하려 드는 불특정 다수, 그들의 오만함을 왜 참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전지전능함을 지닌 절대자의 고유한 인내인가, 해답 없는 질문이 이어질 때가 많다. 아무튼 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다시 촉발된 '인종혐오 반대' 시위가 먼 곳에서 한 명의 아시안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영혼까지 나날이 헤집고 있음인데, 요즘처럼 차별이나 혐오 같은 강하고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오래전 여행을 하며 겪었던 멸시 어린 시선이나, 차별적 발언( 자기네 언어로 얘기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욕은 느껴지니)을 겪어 봤기 때문에 그 순간의 감정이 어떨지 조금이나마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단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자, 또한 누구일까.




'우리는 차별을 위해 싸우면 안 됩니다. 평등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세레체는 자신의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족민들(베추아날란드)을 향해 이렇게 연설한다. 얼마나 숭고한 문장인가. 찬찬히 한 음절씩 끊어 읽어 보기도 하고, 문장을 통째로 기억한 다음 영화에서처럼 연설하듯 내뱉어 보기도 했다. '차별'과 '평등'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되는 문장은 이온 전지처럼 감각을 순간적으로 열리게 한다. -개인은 물론 국가가 가져야 할 존엄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래. 우리 인간은,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절대자에 의해 설계됐었지 않은가. 태초부터.


영화의 배경 1947년의 아프리카 '베추아날란드'는 영국의 식민지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 문화적 경제적 지배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부족 국가였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창궐해 있는, 차별과 배척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부족장으로 장차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이,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험난한 길을 가려고 하다니, 이들의 사랑은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시밭길임을 감수하고 택한 사랑은 역사를 바꿀 만큼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 영화의 핵심인 '인종과 신분, 그리고 경계'의 차이를 극복한 사랑은 요즘 우리가 피부로 겪고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함과 동시에 세상을 향해, 우리 우매한 인간들을 향해 '대체 너희들 뭐니?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라고 일갈하는 것만 같았다.



영화를 보다, 얼마 전 무척이나 감명 깊게 읽었던 김헌 교수의 저서 '천년의 사랑', 글귀 하나를 떠올렸다.


'나와 남을 일치시킬 수 있는 능력, 거기에서 연민이 생기고 연민은 행동력으로 발휘됩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공감과 자각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공감과 자각을 하게 되면 변화는 서서히 따라온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성숙한 시민의식,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인간으로서 함께 펼치고 만들어가야 할 다양한 색깔과 형태의 역사, 이런 것들은 공감과 자각을 통한 연대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민'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사랑' 아닐까, 굳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래서 서로가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이다.


곽재구 시인의 시 '바닥에서도 아름답게'에서 차용함


세레체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고 결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일궈낸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음도 물론이다. 우리말로 붙여진 제목 때문에 흔한 사랑 얘긴 줄 오해했었으나, 영화는 사실에 기반해 '투쟁'과 '자유' '반목과 성장' 같은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이뤄지는 이런 기적의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이 칠흑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희망을 품는다. 그 희망의 불씨로 밤을 밝히고, 동토의 얼음을 녹여낸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닌 사람은 , 그 누구도 자유인이 아니다."


영국으로부터 내려진 말도 안 되는 영구 추방령이 해제된 뒤, 고향으로 귀환한 세레체는 이 한마디로 부족민들을 결집하게 한다. 스스로 주인이 된 사람만이 자유인이며,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사람들이기에 말이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힘은 결국, 타인을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각성한 개개인에게 내재돼 있음을 느낀다. 각각의 행동하는 개인이 모여 올바른 집단을 이루고, 단단해진 집단은 잘못된 사회의 기층 구조를 흔들 수 있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무리보다 더 힘이 센, 세레체처럼 권력을 가진 이들이 한발 더 빨리 각성하고 움직여야 변화의 속도도 가일층 빨라지는 것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건 영화에서 시사하는 바대로 오직 사랑뿐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온전하고 순수한, 타인을 향한 사랑.


뒤늦게 명작 영화를 발견한 기쁨도 잠시, 긍정적 변화를 꿈꾸고 있으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준비가 돼 있다 자위만 해오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나도 여러분도, 쉬 열리지 않을 어떤 맹렬한 사념의 굴레에 갇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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