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삶 동안 숱한 일들, 이를테면 인생에 관련된 갖가지 희로애락을 겪고, 울고 웃으며 구비구비를 돌아왔지만 그때만큼 선명하고도 또렷한 기억도 없었거니와, 이 기억을 어떻게든 지우려 애쓴 적도 없었다. 시간이 이리도 흘렀지만
슬픔이 흥건했던 경험은 혈관마다에 스며들었던 것일까. 바늘 같은기억 한 올이 왔다 갔다 심장을 꿰매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시리고 아프니, 세월이 약이란 말도 어쩌면 그저 하기 좋은 말 뿐일지도 모른다.
2003년 2월 18일이었다.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딸아이의 신학기 준비를 하기 위해, 동성로에 있는 대형 문구점에 갈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아이는 이전 한 해 동안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끝내고 이런저런 재미들을 느끼기 시작한 터라, '이것도 사달라. 저것도 사야 된다' 주문이 쉼 없이 이어지던 차였다. 꼼꼼히 살 것들을 정리해 메모지에 적어 넣으며 무심히 틀어 놓은 tv에 눈길을 준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보고도 믿지 못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속보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지하철에 불이 났고 여전히 진압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사상자는 당장 집계하기 어려울 만큼 많을 것이라는 뉴스였다. 아이와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가고자 했던, 대형 문구점과 갖가지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한 시내, 바로 그 지하철 역에서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우리의 모든 감각을 일시에 닫아버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직감한 듯, 아이가 외투를 벗고는 거실 바닥에 조심스레 앉았다.
"엄마, 우리가 가려던 그 동성로 맞아?"
"응.. 그래 맞아. 어떻게 이런 일이"
점심도 잊은 채, 우리는 뉴스에 몰두했다. 타지에 살고 있는 오라버니를 필두로 친구들, 친지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혹시라도 거기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운 마음은 하루 종일 우리에게 전해지며 더러는 안도감으로 바뀌기도 했다. 나 역시 같은 지역에 있는 친구들, 지인들에게도 안부를 묻고 혹시라도 한 다리 건너 아는 누군가가 거기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마음을 졸이며 하루 종일 tv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뉴스들은 참혹했다. 유독가스와 함께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도시의 최대 번화가를 단숨에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현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속속 발견된 희생자의 이름이 활자로 올라오고 있는 도중, 너무도 익숙한 이름 하나가 스치듯 지나가는 게 아닌가!'아니 저 이름은 동생 대학 친군데'.. 우리 집에 몇 번 놀러 오기도 해서 얼굴까지 생생히 기억하는 친구였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리 흔한 성씨가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확인을 해야 했다.
"지금 tv에 사망자 명단 나오는데, 네 친구가 있어. ㅇㅇㅇ. 빨리 확인해 봐"
설마는 왜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고도 이리 건재한 건가! 설마설마했던 그 명단 속의 친구는 동생의 친구가 맞았다. 병원 진료를 위해 살던 곳에서 기차를 타고 와, 막 전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탔다고 했다. 운명은 이토록 무서운 얼굴로 한 사람의 마지막을 외치는 것이니...... 동생의 확인 전화를 받으며 누구랄 것도 없이 비통하고 서럽게 울기시작했다. 눈물샘이 마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울다가 목이 쉰다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인지를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한 순간에 삶이 꺾인 사람들의 혼이, 바로 내 옆에서 어떤 억울한 기운으로 휘몰아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중년 사내의 방화로 인해, 한 사람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다정하고도 씩씩한 딸이었던 그 친구를 포함해 192명의 사망자와 148명의 부상자가 생겨났다. 그리고 수치로도 기록될 수 없는 크나큰 트라우마는, 무거운 기운으로 도시 전체를 짓누르며 아주 오래도록 덮여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던 우리 모두는 기꺼이 희생자 모두를 위한 상주가 되었다.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어느 누군가의 사랑스럽고도 따스한 가족이었을 이들을 위해 하얀 국화 한 송이씩을 들고 동성로 역으로 향했다. 며칠이 지났어도 여전히 검고 매캐한 공기가 가득한 곳에서 안타깝고 아까운 이들을 위해, 가장 슬프고도 짤막한 헌사를 제가끔 낭독해 드렸다. "편히 쉬세요." 그 헌사에는 그들이 머무는 곳이 어디든 뜨거운 불의 기운만큼은 닿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염원도 함께 들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6년 후 2009년 12월 29일, 팔공산 자락에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세워졌다. 이 도시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여기에 세워진 추모탑 앞에 서서, 새겨진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만나고 묵념을 하게 된다. 그 참혹한 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니 세월은 참으로 무심하고도 무심하다.
아마 오늘도 도시의 여러 곳에서는 추모탑에 새겨진 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이 불리며 촛불이 켜지고 향이 태워질 것이다. 진혼의 하루, 마음은 묵직하고 눈은 시큰거릴 테지만 애써 이 감정을 외면하진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