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2월 끝자락쯤이 되면 찾고 싶어 지는 곳이 있다. 3월 1일에 찾으면 더 의미가 있을 법도 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고 붐비는 걸(시장은 제외지만) 태생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라, 돌이켜보니 거의 2월 중순에서 말경에 이곳을 찾고는 했던 것 같다. 서문시장에서 시작해 길을 건너 한적한 골목을 쭉 따라 올라간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길을 자박 자박 따라 걷다 보면 하릴없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날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렇게 독립된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매번 각성하게 된다.
사시사철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을 지나, 3.1 만세 운동길의 계단을 하나씩 밟고 내려오다 보면 우아하고도 고상한 건축물인 계산성당이 자태를 뽐내고 있고, 큰길을 따라 조금만 더 지나오면 '대구 근대路의 여행 2코스' 중, 진골목으로 진입하기 전 바로 그곳에 내 그리움의 장소, 상화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상화'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아주 진한 색의 그리움 같은 것이 가슴으로 밀려들어온다. 이 그리움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님에 분명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바로 내 고향이라는 사실 거기에서부터 기인하기에, 이 오래되고 사무치는 그리움은. 그리움을 달래려면 단전, 저 깊은 곳으로부터 한 자락의 노래를 끌어올려 낮게 그러나 굳건한 음성으로 불러야 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긴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상화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3월의 시라고 표방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많은 시인들이 억압의 날들과 해방의 날을 그리거나 기다리며 각양각색의 시를 썼지만 상화 시인의 이 시처럼 모든 대한민국의 마음자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시는 흔치 않을 거기에. 또한 제목 하나만으로도 민중의 봉기를 일으킬만 하고 봉기의 정당성, 그 모든 것이 詩語로 적절히 의미화돼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시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학습자료로 내 준 프린트 에서였지만, 이 시를 제대로 해석하고 마음에 담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노래패'로 활동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하루의 짧고도 강렬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가을빛이 조금씩 갈색으로 바래가던 즈음으로 기억 한다.
때마침 10월에 있을 '동아리 창립 기념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다. 광장의 시위 현장에서 만난 우리들 몇은 사람들을 한 데로 모을 수 있는 노래들을 고르고 골라 무대에 올리기로 하였고. 수천수만 마디의 구호나 말보다 노래 한 곡이, 가사 한 줄이 던지는 의미는 그야말로 크나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음을 그간 몇 달의 시위 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했기에 선곡에 모든 구성원들이 심혈을 기울였고 가끔은 서로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보이지 않는 기싸움 같은 것들도 오가고는 했다.
그렇게 각자가 무대에 올릴 자신의 곡들을 가다듬고 있는 사이, 덩기덕! 북소리가 한 차례 울리더니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정처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노래를 부르던 이는 4학년 선배, 북과 장구에 능해 고수로 반주를 주로 맡던 이였다. 마치 우리 가락 창의 한 소절처럼 시작되던 노래는 내가 아는 상화 시인의 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락에 얹혀있는 시가 용틀임을 하는 게 느껴지더니 이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아닌가. 선배는 북의 장단에 맞춰 처연하게, 때로는 장엄하게 한 소절, 한 소절 정성을 다해 노래를 이어나갔고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이들은 침조차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숙연해졌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름답고도 숭고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어떤 시들은 시 자체로도 매우 훌륭하고 가치가 있지만 잘 만들어진 가락에 얹혔을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상화 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도 노래 가사로 바뀌면서 원시의 골조는 유지했지만 곡에 맞게 조금씩 가사가 더해지거나 삭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를 낭송이 아닌 '노래'로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시는 노래로 울려 퍼져 더 오래도록 사람들의 심장을 북처럼 둥~둥 울려야 한다고. 한복의 원형에서 조금씩 벗어났지만 다양한 '생활한복'의 출발이 어쩔 수 없이 한복이듯 그 의미와 정신은 그대로 전승되고 살아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3.1절이라 일찍 눈이 떠졌다. 서둘러 태극기를 꺼내 게양한다. tv에선 3.1절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나는 나만의 기념식을 갖는다. 아주 오래전 광장에서 노래패의 일원이 돼 부르던 그 노래, 상화 시인의 나라를 잃은 통한이 한 줄 한 줄 가사로 꿈틀거리는 바로 그 노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천천히 부르며 가사를 음미한다.
시는 아주 크게 크게 밀물 져 왔다,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굳센 역사의 연대기를 이룬다. 3월의 시, 독립의 날에 태극기와 함께 하늘에 종일토록 기운차게 펄럭이는 시! 피 끓는 울분으로 시작했지만, 잘 다듬어진 화살이 돼 과녁을 정확히 겨냥한 무기가 되는 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 혼을 지닌 각자라면 어느 누가 이 시를 읽고도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으랴. 오늘 하루 마음껏 뜨거워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