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졸업'이 던진 질문: 진짜 졸업은 언제 하는 걸까> 졸업
드라마 '졸업'이 던진 질문: 진짜 졸업은 언제 하는 걸까
살면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아마도 40%는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루 종일 일에 치이다가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새벽 2시까지 몰아보기를 하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는 밤들의 연속.
최근 '졸업'이라는 드라마가 주는 메시지가 아직도 여운이 남아 기록으로 남겨본다.
드라마 제목이 졸업이라, 뭘 졸업한다는 거지? 처음엔 단순히 학원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를 끝까지 완주해야지 '졸업장'이란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주인공 서혜진이 남주인공 위하준에게 건네는 대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내가 뭔가 이뤄내면 그때는 네가 나한테 줘. 빛나는 졸업장"
이 한 줄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졸업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 받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무언가를 이뤄냈을 때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
매달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고,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또 잊힌다. 끝없는 반복의 고리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드라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밤새 몰아보기를 하고 나서 다음 날 멍한 상태로 출근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드라마를 끊었다. 의지력으로 버텨냈다고 생각했는데, 유튜브란 참... ㅋ
알고리즘은 정말 무서운 존재다. 어느 날 갑자기 드라마 '졸업'의 명장면들이 추천 영상으로 떠올랐다. 손가락이 먼저 반응했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충격적인 수치지만, 솔직히 이해가 된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활자를 마주하기보다는, 영상으로 된 콘텐츠가 훨씬 편하다. 그 자리를 드라마가 차지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드라마가 단순한 소비로 끝난다는 점이다. 보는 순간은 재미있지만, 끝나고 나면 허무함만 남는다. 마치 패스트푸드를 먹은 후의 기분처럼.
하지만 한류 드라마는 이제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전 세계로 수출되어 외화를 벌어들이는 중요한 문화 콘텐츠가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본다. 이제 드라마 작가들이 책임감과 사명감까지 가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재미있으면서 시청자를 조금은 성장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종영한 '졸업'(tvN)이 보여준 것은 정말 눈부셨다.
처음에는 대치동 스타강사 정려원(서혜진 역)과 그의 제자 위하준(이준호 역)이 벌이는 로맨스가 전부인 줄 알았다. 학원에서 연애하는 뻔한 이야기로 극 초반에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나 역시 첫 회를 보고 "또 이런 뻔한 설정이구나" 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주인공 둘의 러브라인은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대형 학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각자의 상처와 꿈, 그리고 현실과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졌다.
탄탄한 대본과 세련된 연출로 재미, 감동, 교훈, 여운까지 드라마가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선사했다. 특히 법대생이었던 서혜진이 자신이 왜 돈을 벌려고 했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결국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꿈보다 현실을, 의미보다 돈을 우선시하게 되었을까? 서혜진의 고민은 곧 우리 모두의 고민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국어선생님으로 나온 표상섭 배우는 정말 압권이었다. 진짜 학교 국어선생님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았다. 20년 가까이 국어교사로 공교육에 매진한 그가 자신의 국어 철학대로 문학이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해 강의하는 장면은 꽤 길게 나왔다.
그 수업 장면을 보면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교육이 단순히 정답을 찾는 기술로 전락했을까? 언제부터 문학이 수능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가 되었을까?
표상섭 선생님이 칠판에 쓴 글귀들,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가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안 보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이 부분만 봐도 좋을 것 같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시사하는 부분으로 여운이 오래 남는다.
사실 주연들보다 조연들의 대화가 더 울컥했다. 학원에서 일하는 직원들, 그곳을 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
특히 학원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공부하는 애들 보면 기특해. 나도 저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짧은 대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드라마 '졸업'을 보고 나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언제 진짜 졸업을 하는 걸까?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아니다. 진짜 졸업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것을 향해 진정성 있게 나아갈 때 하는 것 같다. 나이가 몇 살이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상관없이.
서혜진이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순간, 그녀는 진짜 졸업을 한 거였다.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그 순간에.
좋은 드라마는 시간을 때우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졸업'이 바로 그런 드라마였다. 웃고 울면서 보는 동안, 어느새 내 삶도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진짜 졸업은 언제 올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좋은 콘텐츠의 힘이 아닐까.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하는 동반자 같은.
앞으로도 이런 드라마들이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재미와 감동은 기본이고, 시청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그런 작품들 말이다.
그래야 드라마가 우리 삶의 40%를 차지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