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격을 결정한 이야기
책 가격을 결정한 이야기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진짜 가격을 깨달은 건 책을 사려고 했을 때가 아니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정가 13,500원. 인터넷에서 10% 할인받으면 12,150원, 포인트까지 쓰면 12,000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진짜 가격'을 알게 된 건, 코로나 이전 어느 날 워커힐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였다.
출퇴근길에 부러 들린 그곳에서 주문한 커피 한 잔. 정확히 12,000원이었다. 4시간 주차비까지 포함된 가격이라고 했다. 나름 착한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책 한 권의 가격이 커피 한 잔과 같다는 걸.
작가가 몇 년을 고민하고, 밤을 새워가며 써내려간 문장들이, 편집자가 수십 번 다듬고 또 다듬은 문장들이, 그렇게 탄생한 한 권의 책이 고작 커피 한 잔 값이라는 게.
워커힐 라이브러리의 그 커피는 분명 맛있었다. 뷰도 좋았고, 분위기도 근사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면 다 마셨다.
반면 『소년이 온다』는 어떤가.
읽는 동안 내 마음을 뒤흔들었고,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책장에 꽂아두고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가격은 똑같다.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커피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그 순간의 여유와 휴식도 분명 소중하다. 다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걸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작가는 아마 이 책의 가격을 정할 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너무 비싸면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 테고, 너무 싸면 작품의 가치가 절하될까 봐. 출판사도, 서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고민 끝에 정해진 13,500원.
생각해보면 참 합리적인 가격이다.
영화 한 편 보는 값도 안 되고, 점심 한 끼 값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작가의 몇 년간의 삶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이제 책을 살 때마다 생각한다.
이 가격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워커힐 라이브러리의 그 커피는 이미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지만, [소년이 온다]는 여전히 내 서재에서 빛나고 있다.
12,000원의 진짜 의미를 알려준 건, 결국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