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입대 후 첫 통화
아들 입대 후 첫 통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순간이 왔다. 아들과의 첫 통화.
며칠 전부터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과 걱정이 드디어 해소된 시간이었다. 말로는 든든하게 "효자 코스프레 그만해도 돼"라고 농담을 던지곤 했지만, 속으로는 하루하루가 길기만 했다.
오전 10시 33분, 핸드폰 화면에 톡 메시지가 떴다. "엄마 나 폰 받았어요."
군화모카페에서 만난 엄마들의 정보통에 따르면 오후 1시쯤 통화가 가능할 거라고 했다. 그 시간에 맞춰 집에 있어야 했다. 오전에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면 되겠지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1시간 정도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반가운 메시지에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친 곳 없이 지냈다"는 그 한마디에 가슴 한켠에 맺혔던 응어리가 풀렸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했다. 무사히 지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지만 나만 길게 통화할 수는 없었다. 아빠도, 누나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가족 모두가 골고루 1분씩이라도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길게 통화는 여자친구랑 하는 거지, 엄마랑은 간단히 하는 게 좋아."
아들의 농담 섞인 말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그 정도는 엄마도 안다고. 하지만 정말로는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통화 중 아들이 말했다. 내성발톱으로 발톱 사이에서 진물이 났다고.
아, 그 내성발톱. 중학생 때까지는 내가 직접 깎아주었는데, 그때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된 후부터는 본인이 스스로 관리하도록 방법을 알려주었을 뿐이었다.
딱딱한 군화를 신고 훈련을 받으니 압박으로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간 모양이었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프면 진통제를 먹으라고, 항생제가 섞인 연고를 챙겨주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모기 기피제와 선크림만 잔뜩 챙겨주었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생각하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이 짧았네. 미안한 마음으로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아빠는 마지막에 신신당부했다. "힘든 거 참아도 아픈 건 참지 말고 조교에게 꼭 말해. 밤새 아프면 약 먹어."
그런데 아들은 걱정하는 부모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말했다. "내일은 종교활동으로 초코파이 먹으러 가요!"
그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아직은 괜찮구나. 적응하고 있구나.
"아들아, 내일 통화하자."
전화를 끊고 나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들 입대 후 첫 통화를 마친 지금, 기쁜 마음은 잠시뿐이었다. 자꾸만 못 챙겨준 것들만 생각나서 미안했다.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을.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언제나 더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 엄마의 숙명이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다. 아들이 건강하게, 밝게 지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일 또 통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제 하루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