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의 대화
# 아빠와 군대간 아들의 첫 통화 - 끈끈한 전우애
"그래, 좀 놀아도 돼."
군대 가기 전 휴학을 하고 당분간 놀겠다고 하는 아들에게 아빠는 너그럽게 말했다. 스물한 살 청춘이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는 것쯤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의 마음도 조금씩 변해갔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 아들을 보며 불안해졌다. 저렇게 놀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동시에 묘한 부러움도 느꼈다. 심하게 놀아본 적이 없는 아빠 자신을 돌아보며 "부럽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는 대학생 시절을 떠올린다.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았던 세대와,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여유를 아는 세대의 차이일까. 아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때로는 걱정스럽고, 때로는 부러웠다.
출근 시간을 조절해 가며 아들의 아침식사를 챙기는 아빠. 늦잠을 자는 아들을 위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놓고 출근하는 그 마음을 아들이 알까?
"밥 먹고 가라"는 말 한 마디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을 아들은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빠는 그 당연함이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길게만 느껴졌던 군입대 시간이 다가오니 아빠로서 불안해졌다. 과연 우리 아들이 잘할 수 있을까? 아픈 곳은 없을까? 혹시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수많은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손편지를 썼지만 주지 못하고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편지. 아들을 향한 아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그 편지를 왜 전달하지 못했냐고 물어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그냥 톡으로 보냈어"라고 답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편지가 결국 카카오톡 메시지로 바뀌어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편지를 쓰는 동안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린 시절 아들과의 추억들, 함께 놀았던 시간들, 아들이 처음 걸음마를 할 때의 그 설렘을 다시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되어 군대라는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아들을 보며 뿌듯함과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입대 후 기다리던 아들과의 통화 시간이 되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핸드폰을 꼭 쥐고 있던 아빠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통화를 엿듣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빠가 첫 마디로 "응가를 잘 쌌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유치원생도 아닌 스물한 살 아들에게 응가라니?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질문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30년 전 아빠가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 때 걸린 변비로 인해 치질이 되어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이 담긴 질문이었다.
아들은 며칠 만에 응가를 했다고 답했다.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긴장했던 몸이 점점 적응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래, 잘했다. 물 많이 마시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
아빠의 목소리에는 안도감과 함께 여전한 걱정이 묻어있었다. 변비 때문에 고생했던 자신의 경험이 아들에게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빠와 아들의 끈끈한 전우애.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길을 걸어본 두 남자의 공감대였다. 아빠는 이미 그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아들은 이제 그 길을 걷기 시작한 후배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아빠도 군대 갔을 때 힘들었지?"
아들의 질문에 아빠는 잠시 말을 멈췄다. 30년 전 스물한 살 소년이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 처음엔 다들 힘들어. 하지만 적응하면 괜찮아.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격려가 담겨 있었다. 같은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진짜 위로였다.
군대라는 공간은 남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곳이 아니라,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아빠는 이미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신이 되었고, 아들은 이제 그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잘하고 있다. 우리 아들이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아빠의 마음속 독백이다. 걱정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이제 아들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유치원생에게나 물어볼 법한 "응가" 이야기로 시작된 첫 통화. 하지만 그 속에는 아버지의 변하지 않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아들이 스물한 살이 되어도, 군대에 가도, 여전히 아빠에게는 소중한 아이였다.
아빠와 아들 사이의 끈끈한 전우애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같은 길을 걸어본 두 남자의 공감대, 그리고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며칠 후, 아들은 또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또 다시 "응가는 잘 쌌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 질문 속에는 여전히 30년 전 혹한기 훈련의 기억과,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빠와 아들의 끈끈한 전우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