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걷는 박노수 미술관
# 쪽빛 마음, 아들과 함께 걷는 박노수 미술관
"군입대 전에 여행 갈까?"
슬쩍 물어봤지만 아들은 시크했다. "안 가고 싶어요." 단칼에 잘라 말하는 대딩 아들. 좋게 표현하자면 아들은 섬세하다.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잠깐 다녔는데, 가끔 상담 시에 선생님께서 해주시던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봄나들이로 박노수 미술관은 어떨까?
나의 예술 활동은? 늘 그래왔다. 미술관은 아들과, 음악회는 딸과.
각자의 취향에 맞춰 문화를 나누는 것이 우리 가족의 방식이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종로구 옥인1길 34에 위치한 서울시 1종 등록미술관으로, 박노수 화백의 기증작품과 컬렉션 총 천여 점의 풍부한 예술품을 바탕으로 2013년 9월에 설립되었다. 서촌에서 수성동 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이 미술관은 1937년경 지어진 절충식 기법의 가옥으로, 화가가 생전에 실제로 거주했던 공간이다.
박노수 화백은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청전 이상범, 근원 김용준, 월전 장우성을 사사했으며, 1953년 대한민국 국무총리상, 1955년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한국화 1세대의 대표 화가였다. 그의 집이 미술관으로 변모한 이 공간에서는 화가의 일상과 예술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박노수 화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쪽빛'이다. 대한민국 한국화 1세대 작가로 간결하면서도 격조 높은 문인화를 추구했으며, 기존 수묵화에서는 보기 힘든 쪽빛을 감각적으로 채색한 산수화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파란색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깊은 정신적 울림을 담고 있다.
한국화의 전통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하지만 푸르고 붉은 빛깔을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조화로움은 현대적 미감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新 화풍을 구축하여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 낸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파랑색을 좋아하는 우리 아들에게 박노수 화백의 작품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고고하고 기개 높은 준발과 분방한 필세가 특징적이며, 대각구도를 바탕으로 한 청색조의 색채와 빠른 선조가 높은 화격을 구축했다. 화가가 구사하는 쪽빛은 단순한 파랑이 아니라 깊은 명상과 철학이 담긴 색채다.
아들의 섬세한 감성은 어쩌면 박노수 화백의 그것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동양수묵, 부채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시켜 개성이 뚜렷한 화풍을 확립하였으며, 그의 작품에는 광활한 대기를 달리는 시각의 초극 같은 것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화가의 정신세계를 함께 탐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들과 나누고 싶은 시간이다.
군입대를 앞둔 아들과의 시간은 소중하다. 거창한 여행을 거부하는 아들이지만, 조용한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나누는 대화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박노수 화백의 쪽빛 세계를 함께 거닐며, 색채가 주는 감동을 공유하는 것.
〈비마〉, 〈수하〉, 〈선소운〉 등의 대표작들 앞에서 아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파랑색을 좋아하는 아들의 눈에 화가의 쪽빛은 어떻게 다가갈까?
봄날의 서촌 골목길을 걸으며 박노수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아들과 함께 걷는 이 시간이 우리에게는 가장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다. 화가의 집에서 만나는 예술의 향기, 그리고 파랑색처럼 깊고 진한 부자간의 정.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봄나들이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