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할곳이 없어 글을 썼습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by 꼬야책방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까다로운 환자를 만났을 때, 실수를 했을 때... 이런 순간들에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바로 스트레스 반응이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극장 같다.

그리고 간호사인 나는 매일 이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


환자 앞에서는 따뜻하고 든든한 치료자로, 보호자 앞에서는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한 의료진으로, 동료 앞에서는 협력적이고 능숙한 팀원으로.


하지만 가끔 이 역할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새벽 2시, 갑작스럽게 악화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며 의사에게 전화를 걸 때의 떨림.

수술 후 깨어난 환자가 고통스러워할 때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는 당황감.

바쁜 와중에 실습생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답한 후 밀려오는 죄책감.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몸은 경직되고 마음은 메마른다. 집에 돌아가서도 오늘 내가 놓친 것은 없었을까, 환자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샤워를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심지어 잠들기 전까지도.

사람들은 종종 간호사라는 직업을 '천사'에 비유한다. 하지만 천사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감정이 있고, 실수를 하고, 때로는 지치고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서 더욱 꾹꾹 눌러 담는다.


특히 힘든 것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환자와의 관계, 보호자와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상급자와의 관계...

각각의 관계에서 요구받는 역할이 다르고, 때로는 상충되기도 한다.


환자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만, 업무량 때문에 그럴 수 없을 때, 동료가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내 일에 치여 도움을 주지 못할 때의 마음.


그렇게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완벽한 간호사가 되려고 애쓰는 것보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 때로는 더 좋은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괜찮다"라고 거짓 위로를 하는 것보다 "함께 이겨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동료에게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척하는 것보다 "나도 도움이 필요해"라고 인정하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우리는 모두 배우다. 하지만 가장 좋은 연기는 진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간호사라는 역할을 하면서도 인간다운 모습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스트레스와 공존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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