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페이지에서 아들을 마주하다
10시15분이 되자 조교가 와서 불을 꺼버렸다.
한스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 아이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쓴 채 울고 있었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이 나직한 흐느낌이 한스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놓았다.
그다지 향수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향에 두고 온 작고 조용한 혼자만의 방이 그리워졌다.
(92페이지) 헤르만 헤세 ㅡ 수레바퀴 아래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 많긴하지만, 특히 헤세작품에서는 세대를 불문하고 통과의례처럼 거쳐가는 삶의 과정을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 사랑을 받는지도 모르겠어요 ^^
# 책 속 한 페이지에서 아들을 마주하다
헤세의 문장이 가슴을 파고든다.
"10시15분이 되자 조교가 와서 불을 꺼버렸다."
정확한 시간, 규칙적인 일상, 누군가의 통제 아래 놓인 삶. 한스의 기숙사는 우리 아들이 있을 그곳과 얼마나 다를까. 같은 시간에 소등하고, 같은 시간에 기상하며, 누군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그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 아이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쓴 채 울고 있었다."
이 문장에서 나는 무너졌다.
스무 살이 넘었어도, 키가 나보다 커졌어도, 여전히 '아이'인 우리 아들. 집에서는 툴툴거리며 엄마가 챙겨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그 아이가, 지금 어디선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혼자서.
엄마들은 늘 그렇다. 아들이 멀리 있으면 상상으로 그 아이의 하루를 그려본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헤세의 한스처럼 우리 아들도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을 밤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이 나직한 흐느낌이 한스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놓았다."
나 역시 흔들렸다. 책 속 한스의 마음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려올지 모르는 우리 아들의 나직한 흐느낌에. 전화기 너머로는 늘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 뒤에 숨겨진,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들에.
"그래도 고향에 두고 온 작고 조용한 혼자만의 방이 그리워졌다."
그래, 바로 그거다. 우리 아들의 방. 온갖 잡동사니들로 어수선했던, 가끔 냄새도 나서 잔소리했던 그 작은 공간.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여전히 그 아이의 흔적들로 가득한 그곳을. 아들도 분명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헤세는 1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견뎌야 하는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 아이들을 걱정하며 밤잠 못 이루는 부모들의 마음을.
책장을 덮고 한참을 울었다. 한스에게, 우리 아들에게, 그리고 집을 그리워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내일은 짧은 안부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잘 지내냐"는 뻔한 질문 대신,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먼저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