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이야기 한 조각의 인문학

가을 단풍 사이로 스며든 그리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by 꼬야책방

출근길,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 며칠 전까지만 해도 푸르렀던 잎사귀들이 어느새 황금빛으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이 유독 따스하면서도 쓸쓸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얼마나 빠르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3년 전,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늘 허리가 불편하시다고 하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소화가 잘 안 된다"고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허리 통증은 익숙했지만, 소화불량이라는 새로운 증상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자세가 좋지 않아 생긴 역류성 식도염으로 약을 드시긴 했지만, 설마 식도가 좁아져서 음식을 삼키기 힘든 상태까지 되었을 줄은 몰랐다.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뼈아프게 떠오른다. 의료진이었던 나조차 아버지의 아픔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으니 말이다. 식도확장술을 무사히 마치고 함께 보낸 회복기. 그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은행나무 숲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수나무만 있어서 냄새가 나지 않고, 노란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길을 걸어가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화면에 펼쳐졌다.


"우리도 저기 놀러가자."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작은 설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가요."


그 '나중에'는 영영 오지 않았다.


아프다고, 불편하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가족 중 유일한 의료인이었던 나에게는 모든 결정의 무게가 집중되었고, 그 부담감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보다는 내 아이들과 떠나는 여행을 먼저 생각했다. 부모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실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본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주인공은 자궁암 환자이면서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 치매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 그리고 사고뭉치 동생의 누나였다. 암 진단부터 치료 과정, 그리고 임종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아버지는 늘 가족이 우선이었다. 본인의 아픔이나 불편함보다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항상 "괜찮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아프시다고 해도 곧 괜찮아지실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의 아들이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달라는 엄마에게 "나중에"라고 말하는 것처럼.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랫말이 마음을 파고든다. 정말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다.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존재의 소중함을 모른다.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영원할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다가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부모님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그것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전쟁 같은 삶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을 견뎌내고, 자식들을 키워내고,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오신 삶. 그 치열함과 숭고함을 나는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더욱 진하게 느꼈다. 우리 인생에서 이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가을 단풍이 지고 나면 겨울이 온다. 그리고 다시 봄이 찾아온다. 계절은 돌고 돌지만, 떠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나중에'라는 말 대신 '지금'이라는 말을 더 자주 써야 한다.



아버지가 가고 싶어 하셨던 은행나무 숲, 이번 가을에는 꼭 가보려고 한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 노란 낙엽을 밟아보고 싶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 이제야 왔어요. 늦었지만 왔어요."



단풍이 드는 계절,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이들에 대한 사랑도 더욱 진해진다.

떠나보낸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지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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