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곳이 없어 글을 썼습니다

혼자 견뎌내야 하는 마음의 짐

by 꼬야책방

혼자 견뎌내야 하는 마음의 짐


아침 출근길에 뉴스를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퇴사 1년차 간호사가 하객알바를 알아본다는 글이었다. 대학 4년을 간호학과에서 보내고,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그 힘든 신규 교육을 견뎌낸 사람이 결국 예식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니.


지하철에서 그 글을 보며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할까.


2023년 5월 정부에서 발표했다. 간호사 1명이 5명 이상의 환자를 볼 수 없게 하겠다고. 뉴스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발표는 좋다. 하지만 실행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발표가 있었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없었으니까.


'티슈노동자'라는 표현이 가슴에 박힌다. 많이 뽑고 많이 버린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간호사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말이다. 현직 간호사로서 이 상황이 정말 가슴 아프다. 아프기만 하고,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겨를.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말한다. 잠시 곁을 내어주는 것.)


우리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환자를 돌보느라, 차트를 작성하느라, 응급상황에 대응하느라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퇴근 길 발걸음이 무겁다. 다음 날 또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 있는 간호사를 꿈꾸게 되었다.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보호자의 불안함을 차근차근 달래주고, 신규 간호사에게 여유롭게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간호사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07년부터 간호대 정원은 계속 늘어났다. 간호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학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그 많던 간호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매년 수많은 간호사들이 배출되는데, 왜 현장에서는 여전히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일까?


답은 간단하다. 들어오는 만큼 나가기 때문이다. 아니, 들어오는 것보다 더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없다. 신규 간호사들이 못 버티고 나가면 다음 해에 대체할 신규는 차고 넘친다. 오히려 월급 많이 줘야 하는 경력 간호사보다는 신규 간호사가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내는 악순환은 참혹하다. 경력 간호사들이 떠나면서 신규 간호사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

선배들은 너무 바빠서 차근차근 가르쳐줄 여유가 없고, 신규들은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결국 또 다른 퇴사자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신규 간호사 교육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업무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투약법, 차트 작성법, 응급상황 대처법...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 들어온 간호사들의 눈을 보면 불안함이 가득하다. 실수할까 봐, 환자에게 해를 끼칠까 봐, 선배들에게 혼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괜찮다,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력은 부족하고 업무는 많고, 환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결국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워진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이들의 열정이 꺾이는 순간을 목격할 때다.


처음에는 환자를 정말 잘 돌보고 싶어 한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저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만 급급해진다.


"환자를 위해서"라는 말이 "일을 끝내기 위해서"로 바뀌는 순간,

그들의 눈빛도 함께 변한다.

최근 한 신규 간호사가 사직서를 냈다. 마지막 날,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어린시절부터 간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간호사 일 같지 않아요.“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간호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걸까?


환자 한 명 한 명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시간도 없이, 기계적으로 투약하고 차트 기록하고 검사실 보내고... 이것이 우리가 꿈꿨던 간호사의 모습일까?

병원 경영진들은 간호사 부족 문제를 단순히 숫자의 문제로만 본다. 10명이 부족하면 10명을 더 뽑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건 왜 그들이 떠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업무량인지, 근무환경인지, 조직문화인지, 아니면 사회적 인식인지.

간호사라는 직업은 본질적으로 돌봄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유 과정에 동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은 누가 돌봐주는가? 환자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호자의 원망을 들었을 때의 마음은 누가 어루만져주는가?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이런 마음의 짐을 혼자 견뎌낸다.

동료들도 각자 바쁘고,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더욱 외로워진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혼자서 끙끙 앓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출근한다.


오늘도 누군가의 아픔을 돌보기 위해, 누군가의 곁을 지키기 위해. 완벽하지 않더라도, 여유롭지 않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런 우리를 좀 더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티슈처럼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그런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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