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알려준 것들
# 시간이 알려준 것들
명절 때마다 들려오던 그 질문들이 있었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좋은 사람은 없니?" 어른들의 관심 어린 목소리는 때로 잔소리처럼 들렸고, 나는 그런 자리가 불편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저 자유롭게, 내 방식대로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질문 뒤에 숨은 마음을. 혼자가 아닌 삶,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시간은 참 묘한 스승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천천히 깨닫게 해준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그 따뜻함을. 세상을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친구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생각보다 차갑다. "그래도 네가 좀 더 조심했어야지." "원래 세상이 그런 거야." 위로를 구했던 자리에서 오히려 상처를 받고 돌아오는 날들이 많았다.
그제야 알았다.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는 것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내가 옳든 그르든 먼저 내 마음을 안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가족이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기로. 억지로 웃으며 맞추려 하지 않기로. 그 노력은 결국 나만 지치게 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본 글귀가 있다. "억지로 웃지 말걸.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바보처럼 단호하게 멀어지지 못하고 억지로 이어가려 애썼네. 결국 마음만 닳아버렸네."
정말 그랬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 애쓰면서, 나는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진짜 내 모습은 감춘 채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려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몇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몇 사람 중 가장 확실한 이들이 바로 가족이라는 것을.
어쩌면 명절 때마다 결혼 이야기를 꺼내시던 어른들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 외로울 때, 힘들 때, 곁에 있어줄 사람의 소중함을. 무조건적인 사랑이 주는 위안을.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라고. 내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느낀다.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에 감사한다. 비록 늦었지만,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제라도 그 소중함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