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와 함께한 시간

말할 곳이 없어 글을 썼습니다.

by 꼬야책방

1년의 여정, 그리스신화와 함께한 시간

1년 프로젝트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윤기의 그리스신화를 펼쳐 들고, 이어서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까지 손에 쥐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새 사계절이 지나가고,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있었다.




여름의 독서는 냉방이 잘 되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내려오는 자리에 앉아, 제우스와 아폴론의 이야기를 읽었다. 때로는 도서관 열람실 구석 자리에서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을 따라갔다.


겨울이 되니 자연스럽게 따뜻한 곳을 찾게 되었다. 난방이 잘 되는 카페, 햇살이 잘 드는 도서관 창가. 책을 들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완독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처음엔 신화를 독파해 보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했다. 그리스신화의 방대한 세계를 머릿속에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50%도 안 된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퇴치한 이야기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이야기가 뒤섞이기 일쑤다. 누가 누구의 자식이고, 어떤 신이 어떤 영역을 담당하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남은 게 있다. 중간중간 정리했던 글들이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주는 신화 속 교훈들,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짧게나마 적어두었던 메모들. 이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그 긴 여정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흔적이다.

역시 글로 남겨야 한다는 걸 한 번 더 느꼈다. 읽기만 하면 흘러가버린다. 아무리 감동적이었던 대목도, 아무리 무릎을 쳤던 통찰도, 시간이 지나면 안개처럼 흐릿해진다. 하지만 글로 남기면 다르다. 그때의 생각, 그때의 감정, 그때 발견했던 의미가 고스란히 보존된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리스신화와 함께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모든 내용을 꿰뚫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살았다는 것, 책을 손에 들고 여름의 시원함과 겨울의 따스함 속에서 신화의 세계를 여행했다는 것이다.




새해가 다가온다. 또다시 독서로 한 해를 시작하려 한다. 이번엔 어떤 책과 함께 1년을 보내게 될까. 어떤 카페와 도서관을 찾아다니게 될까. 그리고 올해는 조금 더 부지런히 글을 남겨볼까 한다. 1년 후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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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신화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야담님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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