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증거, 먹고 자다
남편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던 여섯 시간 동안의 긴 수술을 견뎌냈다. 중환자실 복도에서 눈가에 피로가 짙게 내려앉은 의사가 담담하게 “큰 산 하나를 넘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대동맥 파열 수술을 하던 중, 또 하나의 동맥이 터지는 바람에 응급 상황을 알릴 새도 없었다는 속사정과 함께 앞으로 2주일이 고비라고 덧붙였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내뱉은 그의 말에 공포와 불안과 긴장이 동시에 몰려왔다. 14일 동안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는다. 면회는 불가능하고 전화로 남편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예단할 수 없고 환자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못을 박으며 의사가 자리를 떴다.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일이 없어진 우리는, 의식도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중환자실에 홀로 두고 억지로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외엔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딸 내외도, 아들도, 나도. 그럼에도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인간의 몸은 때로, 큰 충격 앞에서 본능마저 숨을 죽인다. 먹는다는 행위가 삶의 증거라면, 그날의 나는 이미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끊은 존재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만큼은 멈출 수 없는 엄마로서의 사명이다. 씹고 삼키는 그 단순한 행위를 통해 내 아이들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정신을 다잡고 간단한 음식을 배달시켰다.
함께 있어야 할 남편의 빈자리가 식탁 위에 남편 몫 하나만큼 비어 있었다. 남편이 평소 즐겨 먹던 참치 김밥 앞에서 젓가락이 멈췄다. 김밥에서 고소한 참기름 향이 은근히 피어올랐다. 목이 메어왔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오롯이 말아서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아이들이 밥숟가락을 내려놓을까 봐, 숨을 삼키듯 밥을 천천히 삼켰다. 그때 문득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속 문장이 떠올랐다. ‘밥을 먹는 일이 이렇게 슬플 줄 몰랐다. 밥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의무였다.’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이 고통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생의 증거였다. 딸과 아들도 말없이 밥을 먹었다. 사위가 큰 눈으로 홀연히 나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밥에 시선을 두었다. 그 표정 속에 애절함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위로를 하고자 했으나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위에게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남편 건강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훅 밀려들었다. 남편의 부재가 만든 집안의 공기는 탁하고 무거웠다. 딸 내외는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겨 수원 집으로 떠났다. 덩그러니 남은 아들과 나는 꼼짝도 않고 식탁에 앉아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에 대해 심도 높게 논하였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온전히 홀로 된 나는 겨우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올 리 만무했다. 방 안은 고요했다. 냉장고 모터가 간헐적으로 윙하고 울렸다가 이내 멎었다. 정적이 다시 방을 가득 메웠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시간만 멈춘 듯했다. 남편을 병원에 두고 왔는데, 이게 정말 현실이 맞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남편이 여전히 지방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안방이 낯설게 느껴졌다. 남편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서 냉기가 스며들었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는데, 내 시간만 멈춘 듯했다. 부재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들이 잠들었다 싶은 순간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루 종일 억눌러왔던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정적을 깨고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숨죽여가며 울음소리를 "끅끅" 삼켰다.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이 눈물과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마치 내 안에 쌓였던 긴장과 떨림이 눈물과 콧물로 쏙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은 처리하는데 문제가 될 게 없었지만 콧물은 주체하기가 버거웠다. 숨죽여가며 콧물을 풀어내는 것은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다. 드뎌 휴지가 베개 맡에 수북히 싸인 후에 눈물이 뚝 그쳤다. 울음에도 끝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할 없던 어느 순간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금세 깼다. 잠이 깊게 들면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절대로 잠을 자면 안 되는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온갖 상상과 망상이 뒤엉킨 상태에서 참담한 하룻밤을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