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규
극한 고통을 이겨내고 보름만에 남편을 만났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 온 남편을 처음으로 마주하였다. 마치 보름 동안 죽어 있다가 살아 돌아온 듯이 반가움이 컸다. 남편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영문도 모른 채 중환자 실에서 오롯이 홀로 견뎌낸 끝에 가족을 마주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평소 잘 웃지도, 말도 많지 않던 그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쏟아냈다. 마치 술 한 잔 걸친 듯 들뜬 모습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병실 안을 경쾌하게 울렸다. 마치 병원이 천국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천국이 그저 찰나였다는 걸,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간병은 처음이었다. ‘남편이니까’ 할 수 있다고 나를 믿었다. 주치의는 반신반의했다.
“편마비에, 체격도 크신 분이라 쉽지 않을 텐데요.”
라며 우려를 표했다. 나는 남편의 병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한 채 무작정 간병을 자처한 셈이다. 간병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내가 간병에 뛰어들게 된 것은 중환자실에서 2주일이나 남편 혼자 있었기 때문에, 간병인 손에 남편을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실에서 남편은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침대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었고, 우리는 집에서처럼 오순도순 지냈다. 밥을 챙기고, 약을 건네고, 때로는 웃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간병이란 게 생각보다 별거 아닌 듯했다.
그러던 중, 화장실 문제가 터졌다. 여태 껏 침대 밖으로 나올 일 없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데 남편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환자는 대부분 침대에 누워서 지내는 게 통상적이라서 그때까지는 몰랐다. 남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편마비, 말만 들어봤지 실제의 상황을 마주한 나는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남편의 몸 상태를 직시하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혼자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 옆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남편을 휠체어로 옮길 수 있었다.
편마비 환자에겐 기저귀 사용이 일반적이라는데, 남편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간호사한테 겨우 허락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이동하는 중에 남편이 넘어져 버렸다. 왼발이 바닥에 디뎌지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남편이 눈 깜짝할 새에 낙상을 했다. 휠체어의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웠는데 오른손으로 그것을 풀고 밖으로 걸어 나오다가 벌어진 일이다.(휠체어 안전벨트는 환자가 풀지 못하도록 설계되어야 된다. 뒤쪽에 있어야 마땅하다.) 남편은 예전처럼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인데 내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지 못한 것이다. 60 평생을 걸어온 몸이, 하루아침에 말을 듣지 않게 됐다는 걸 실감할 리 없다는 것을. 기막힌 상황을 마주한 나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낙상 후 간호사들이 달려와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몸 상태를 점검했다. 남편은 아픈 것보다, 쓰러졌다는 사실에 더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극도로 자존심이 무너진 순간이었으리라. 갑작스러운 마비, 그 충격이 뇌 안의 질서를 무너뜨린 것이리라. 낯선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섬망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존엄성에 금이 가면서 시작된 혼란, 그 여진이 세차게 몰려올 조짐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낙상 이후, 병원 측에서는 남편을 절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남편은 용변을 보기 위해 계속 화장실 가기를 원했다. 간호사들은 돌아가며 설득에 나섰다. 담당 간호사는 고운 얼굴에 단단한 말투로 말했다.
“환자분, 또 넘어지실 수 있으니 이동하는 것은 안 됩니다. 기저귀 사용하셔야 해요. 다른 분들도 다 그렇게 하시니 따라 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남편은 성난 목소리로 맞섰다.
“내 이름이 있는데 왜 자꾸 환자라고 불러? 그리고 간호사 너, 네가 여기 누워서 볼 일을 봐봐. 그러면 나도 해 볼 테니까!”
남편은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간호사들은 곧바로 ‘섬망’ 상태임을 파악하고 대응에 나섰다.
침대 난간에 손발을 묶는 게 환자 안전을 위한 조치라면서 강행하려고 하다가 실패를 했다. 남편이 격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링거 줄을 남편이 와장창 뽑아서 패대기를 쳐 버렸다.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편의 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긴장감이 공기를 무겁게 했다. 간호사들과 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병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남편이 몸부림치며 내는 날카로운 신음소리와 링거 줄이 흔들리며 끊어지는 소리가 병실을 가득 메웠다. 혼탁한 공기가 숨을 조여왔다. 그 와중에 남편은 뜬금없이
“너희들, 나 납치하려는 거지? 이 사람들한테 나 얼마 받고 넘긴 거야? 믿었던 당신이 나를 팔아넘길 줄은 몰랐어. 아이, 씨.”
나는 절절히 변명해 보지만, 그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달라고 하더니 주소록을 뒤지며, 경봉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봉아, 나 납치당한 것 같아. 좀 와서 구해줘…”
그렇게 시작된 섬망은 무려 열 시간 이상 이어졌다. 이성을 잃은 남편 앞에서 나는 꼼짝도 못 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설득이나 이해를 시킨다고 남편에게 말을 붙였다가는 들불이 산불로 번질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 고통스럽고 참담했던 것은, 남편이 침대에서 계속 일어나려 했다는 점이다.(섬망이 시작되기 전에 간호사가 소변줄을 빼버렸는데 그게 옳은 처사였는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소변줄을 뺏기 때문에 남편은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편마비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남편은 줄기차게 일어나기를 시도했다. 넘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첫날부터 이런 참극을 겪고 있는 나는, 마치 얼음물에 빠진 듯 온몸이 식어갔다. 감정이 식은 채 남편의 행위 하나하나를 오롯이 지켜보는 나. 마치《변신》속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바라보는 가족처럼, 나는 낯선 남편을 밤 새 지켜보아야만 했다. 인간의 의지가 몸의 명령에 역행할 때 벌어지는 그 처참함을, 나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었다. 오뚝이처럼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남편. 그는 계속해서 독백을 했다.
“왜 몸이 맘대로 안 움직여지지. 미치겠네. 왜 이러는 거야. 왜? 아이 씨...”
남편의 절규가 침대 난간에 부딪히는 금속음과 함께 울렸다. 화장실을 스스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남편은 침대보를 다섯 번이나 적셨다. 소변으로 젖은 옷과 침대보를 갈아입히며 그 상황 모두를 나는 온몸으로 받아냈다. 훈련받은 간병사들도 버거운 일을 그 새벽에 다 해냈다. 간병 첫날에 신고식을 처절하게 치러냈다. 몸이 부서질 정도였지만 정신력으로 꿋꿋하게 버텨냈다.
나는 이를 앙다문다. 긴장과 공포가 뒤섞인 병원 공기가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입안이 빠른 속도로 타들어 간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조상님이든 하느님이든, 누구에게든 묻고 싶다.
“어찌하여 우리 부부에게 이토록 가혹한 벌을 내리십니까. 제발,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절규하는 마음으로 나는 허공을 향해 소리친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온 힘을 끌어 모아서 목청껏 외쳐 본다.
섬 망(혼돈 상태) : 의학적 이유로 수 시간에서 수 일에 걸쳐 나타나는 급성 혼란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