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함에 끌리는 결핍, 그리고 집착

8강 서하진의 제부도를 읽고 감상문 쓰기

by 능수버들


어느 집의 담 너머 하얗게 널린 빨래처럼
그는 정물 같다.

그 무심한 뒷모습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알면서도 때로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 남자처럼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내 얼굴과 목소리, 몸을 얘기하다가 뒤에서는 내 출신을 입에 올렸지만,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듯했다. 일에만 집중하는 그의 차갑고 무뚝뚝한 무심함은, 어린 시절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했던 나에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나는 그 무심함에 속절없이 끌렸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서는 일은 산을 오르는 것만큼 어렵고, 말을 이끌어내는 일은 더 힘겨웠다. 가시나무와 잡목더미에 긁히고 웅덩이에 빠지면서도, 나는 그 산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녀는 왜 그토록 무심한 남자에게 끌렸을까?

그 이유는 단순한 호감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쏟았다. 그녀의 출신과 배경을 입에 올렸다. 그녀에 대한 주변의 부당한 평가가 부담스럽고, 때로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에게 무심한 남자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고, 마음을 재단하지도 않았다. 허튼 농담 한 번 건네지 않은 무심함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유와 안도를 느꼈다. 과잉 관심에 지친 그녀는 그에게서 숨 쉴 틈을 찾았고, 결핍에 익숙한 그녀는 그의 무심함 속에서 안정감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무심함은 그녀를 향한 고요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마음을 나누는 대신, 그녀를 단지 애욕의 대상으로 여겼다. 마음을 나누는 대상은 아내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녀는 남자의 냉담을 깨고, 마음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결국 그녀가 사랑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무심하게 대하는 사람에게조차 매달리게 만든 과거의 패턴이었다.


엄마의 삶이 부끄러웠던 그녀도 역시 엄마처럼 살아간다. 부끄러움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다른 이름일 뿐, 엄마의 수치스러운 삶이 이미 그녀 안에 각인 돼 있었다. 사람은 자신을 옭아맨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그 몸부림의 방향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향한다.


그녀는 남자에게 매달리고, 안달복달한다. 그것은 사랑의 동작이 아니라 결핍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남자가 던진 교묘한 말들이 실제로 그녀를 향한 것인지,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아무에게나 흘린 것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그녀. 남자가 내미는 희미한 불빛 하나에 모든 감정을 쏟아붓는다.


갑자기 제부도 바닷길이 닫힐 때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완전히 떠나버렸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 움직인다. 기어이 제부도를 다시 찾는 이유는 그를 향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파국을 끝까지 따라가 보려는 충동 때문이다. 썰물과 밀물처럼 열렸다 닫혔다 하는 제부도는, 남자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관계의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가 남긴 간헐적인 관심과 무심함 사이를 헤매던 그녀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서조차 그녀는 자신의 실체는 보지 못한 채, 여전히 그림자만 쫓는다. 이러한 집착을 유감스럽게도 그녀만 모르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이 지점, ‘회복의 부재’를 정직하게 그려내는 데 있다. 그 남자가 사라져 버린 이유는 이미 명징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제부도 바닷길이 열릴 때 그 자리를 다시 찾는다. 그 남자의 무심함에 끌린 이유가 결핍 때문이었고, 그 결핍이 결국 집착으로 비틀려 남자를 떠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서하진은 한 인간이 결핍의 굴레 안에서 어떻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어떻게 스스로 파국을 반복하는지를 차갑도록 또렷하게 응시한다. 그것이 이 소설의 힘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이 작품의 한계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녀의 세계를 집요하게 응시하지만, 그 세계 밖으로 나갈 발판은 어느 지점에서도 마련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어디론가 향하는 듯 흔들리지만, 끝내 같은 자리를 맴도는 데서 멈춘다. 회복을 향하지 않는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잔혹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독자가 스스로 비집고 들어가 해석을 확장할 여백을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 작품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정윤 작가님 첨삭

능수버들 작가님 소설 <제부도>에 대한 감상문을 잘 읽었습니다. 글을 너무 잘 쓰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잘 쓰셔도 되는지요^^ 이 글은 단순히 감상을 넘어 소설의 주제 의식, 인물의 심리 서사 구조의 장단점을 탁월하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심리적 패턴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주인공이 그토록 무심한 남자에게 끌리고 집착한 이유는 깊은 결핍과 병리적 패턴이었습니다.

'자신을 옭아맨 세계에서 벗어나려다가 오히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인간 심리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남자의 냉담함을 자신의 노력으로 깰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남자의 간헐적 관심에도 모든 감정을 쏟아부으며 결국 자신의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소설에서 서하진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쓰신 것 같습니다^^

작가님들께서 숙제도 열심히 해주시지만, 글이 점점 발전하고 있어서 제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임해주시니 저도 더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
능수버들 답글

정윤 샘 성의가 괴씸(?)하셔 숙제로 보답하고 싶었답니다.제부도 감상문은 결핍과 집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퇴고에 퇴고를 거듭했고요.그래도 글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배우는 단계에서 과제로 제출한 것이기에 만족합니다.

샘의 칭찬에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네요.
뭐든 힘을 빼야 된다는데 힘이 들어가는 걸 보니 아직 멀었지요.ㅎ

정윤 작가님 답글
어깨에 힘들어가도 됩니다^^ 너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