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팔찌로 누명을 쓸 뻔한 너
순댓국집에서 숙향이는 소주 한 병을 너무 쉽게 비웠다.
병이 비워지는 속도가 그날 저녁의 방향을 이미 정해놓은 것처럼 보였고, 국물 위로 떠 있던 들깨 가루가 천천히 가라앉는 동안 숙향이의 볼은 복숭아처럼 물들었다.
“노래방 갈래?”
그 말은 제안이 아니라 통보였고, 오십을 막 넘긴 그녀는 연년생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뒤 갱년기와 허허로움을 동시에 겪어내는 중이었다.
외로움이 몸 안에서 방향을 잃으면 사람은 이유 없이 들뜨거나 이유 없이 공격적이 되는데, 숙향이는 그 두 감정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다.
그녀는 남편을 해바라기라고 불렀고, 자기만 바라보는 눈이 징그럽다며 정시에 퇴근해 집에 들어오는 성실함조차 죄처럼 말했다.
밥 하기 귀찮아 저녁은 늘 밖에서 해결한다는 그녀는 둘이 있으면 재미없다며 습관처럼 너를 그들 부부 사이에 끼워 넣었고, 부근에 사는 사이라 그날도 너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나섰다.
솔직히 너는 그녀와 결이 맞지 않았고,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애썼지만 저녁 시간이라 번번이 붙잡히는 신세였다.
노래방으로 가는 골목에서 조금 앞서 걷는 남자 셋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 순댓국집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평소 낯을 가리던 숙향이는 그날따라 달랐고, 참이슬이 대신 내준 용기(?) 덕에 말을 쉽게 붙었다.
“혹시 노래방 가세요?”
합석은 생각보다 간단히 결정되었고 숙향이 남편이 함께였기에 너는 별다른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다.
노래방 기계가 켜진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만취한 남자 셋은 약속이나 한 듯 소파에 드러누운 채 커어억 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렸다.
마치 우리 셋만 노래방에 온 듯이 너와 숙향이 부부는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퍽 잘하는 숙향이는 숨어우는 바람 소리를 구성지게 불렀고, 숙향이 남편은 어머니가 그리운지 홍시를 애절하게 불렀으며, 너는 등 떠밀려서 바다에 누워를 불렀다.
그때 잠들어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갔다.
보통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였다.
볼 일을 보고 비틀거리며 돌아온 그는 아무 예고도 없이 마이크를 집어 들어 숙향이 남편을 향해 휘둘렀다.
아뿔싸! 화장실에 다녀온 그 남자는 숙향이와 너를 도우미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부른 도우미들인데 왜 네가 데리고 노냐고!”
방 안의 공기가 그 말 한마디로 찢어졌고, 설명할 틈도 상황을 수습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들어 있던 나머지 두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패싸움이 벌어진 줄 알았는지 술이 덜 깬 그들은 숙향이 부부와 너를 향해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부지불식 간에 일어난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112에 전화를 걸 때 손은 떨렸지만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차분했고, 그 차분함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피해자인 숙향이와 너는 경찰차를 타고 숙향이 남편은 자가용을 이용하고 가해자인 남자 셋은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동시에 이동했다.
경찰서 앞에 차량 세 대가 멈춰 섰고, 경찰차에서 먼저 내린 숙향이는 마치 오래전부터 연습해 둔 동선처럼 자연스럽게 남편의 차로 향했다.
숙향이는 뒷좌석 문을 열고 몸을 숙였고, 차 안에 가방을 내려놓는 동작은 너무 짧고 매끄러워 너는 그 의미를 그 순간 알아채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경찰차 안에서 숙향이가 가슴에 꼬옥 품에 안고 있던 가방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차안에 두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경찰서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조서는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남자 셋은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의자에 앉아 고꾸라질 듯 졸음에 겨워 있었고, 그들이 술이 깰 때까지 시간은 무한정 늘어질 예정이었다.
우리 반대쪽에서 취객이 책상을 손으로 탁 치며 고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때 체구가 큰 남자 하나가 졸다 말고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몸의 중심을 잡아 세웠다.
일어나면서 술이 후다닥 깼는지, 토끼눈처럼 충혈된 눈을 치켜뜨며 갑자기 소리쳤다.
“내 팔찌!”
말은 흐느적거리는데 지목은 칼끝처럼 정확한 그 기괴함.
검정 티를 입은 저 여자가 노래방에서 줍는 걸 봤다며 팔찌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너는 본 적도 없는 물건이라며 숙향이를 가리켜 저 친구가 줍는 걸 본 게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그의 검지손가락은 단호하게 너를 향해 있었다.
깡마르고 까칠하게 생긴 경찰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너를 내려다보았다.
말투에는 예의가 없었다.
“가방 좀 봅시다.”
너는 버선목을 뒤집듯 가방을 통째로 쏟아부었다.
책 한 권과 휴대폰, 립스틱과 샤프펜슬이 바닥에 흩어졌다.
금속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경찰관의 시선이 바닥을 훑었다.
“주머니도 뒤집어 보세요.”
옷 주머니를 하나씩 뒤집었다.
손끝이 떨려 천이 잘 잡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는 아니에요.”
“정말 저는 팔찌를 본 적도 없다고요.”
어디에도 없는 팔찌 앞에서 억울함보다 먼저 밀려온 감정은 공포였고, 손은 점점 부자유스러워졌으며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지는 것처럼 허무해졌다.
눈은 초점을 잃고 귀는 쓸데없이 모든 소리를 끌어당겼으며, 누명이라는 단어가 마음 안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피해자 신분으로 출두한 경찰서가 너는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억울함을 느낄 때 제일 무서운 순간이 아무리 부정해도 상대가 확신하는 얼굴을 볼 때이다.
경찰관이 무전기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혹시 차 안에 떨어져 있는지 확인해 보시죠.”
동선이 뻔해 숨길 새가 없다는 걸 잘 아는 경찰관은 차 좌석 밑과 바닥과 틈새를 모두 샅샅이 찾아보라고 명했다.
숙향이는 조서를 받는 중이라 너는 숙향이 남편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밤공기를 무겁게 갈랐다.
좌석 밑.
바닥.
문 옆 틈.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고개를 깊숙이 숙여서 바늘을 찾듯이 공을 들였지만 어디에도 황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너는 숨이 가슴에 걸려 쉬이 내려가지 않았다.
대략 난감했다.
차 안에도 없고 노래방에도 없고 너한테도 없는 스무 돈 짜리 금 팔찌.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눈앞이 캄캄했다.
만취한 팔찌 주인은 여전히 너를 노려보고 있었고, 경찰관의 표정은 이미 결론을 낸 사람처럼 굳어 있었는데.
절도범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너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해야 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싶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너는 코로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배를 크게 부풀렸다.
가슴 안에 가득 가둔 숨을 길게 내쉬려던 참에, 불현듯 뒷좌석에 놓인 숙향이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하는 마음과 동시에 설마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퍼를 열었을 때, 가방 안에서 황금색 팔찌가 뽐을 내며 너를 한껏 반겨 주었다.
“너는 절도범이 아니야!”
숙향이는
“네 팔찌인 줄 알고 가방에 넣어 둔 것”
이라며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변명을 해댔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노보다 먼저 말문이 막혔지만, 너의 만행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어 일단 안도했다.
그리고 숙향의 그 말들이 이미 여러 번 사용된 적이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매끄러워서 소름이 돋았다.
망설임 없이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