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남동생만 셋인데, 오빠가 한 명 더 있다고!

첫나들이 나간 남편을 극진하게 맞이한 동생

by 능수버들

나에게는 오빠 같은 동생이 하나 있다.


4남매 중 맏이인 나는 남동생만 셋인데, 누가 물으면 남동생 셋에 오빠 같은 동생이 한 명 더 있다고 답한다. 동생들 중 여덟 살 터울인 막냇동생은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업어 키운 아이였다. 그때 내 등에 업혀 있던 시간이 뿌리처럼 단단히 내려서인지, 다른 동생들보다 유독 살갑게 지낸다. <아기 업은 소녀>라는 그림을 볼 때마다 자연스레 그때의 나와 동생 모습이 떠오른다.


며칠 전, 남편 친구가 영화 촬영 장비를 싣고 광양으로 향했다. 그 길에 남편도 동행했다. 뇌출혈 이후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과 떠나는 길이었다. 세 개의 발판을 디딘 뒤에야 오르내릴 수 있는 트레일러. 20년 동안 큰 차에 몸 담았던 남편이었지만 왼쪽 몸이 불편해지면서 그 발판이 마치 히말리아 고지처럼 느껴졌다. 그날 마침내 그 산의 첫 고개를 넘을 용기를 냈다. 배웅을 나갔던 아들은 아빠가 차에 오르고 내리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 “엄마 없이 여행 다녀오셔도 되겠네요”라며 허락을 내렸다. 남편은 그 허락을 작은 날개 삼아 설렘을 듬뿍 안고 길을 나섰다.


천안에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웠던 탓에, 그들은 여섯 시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광양까지 내달렸다. 그곳에 살고 있는 막냇동생은 이미 현장에 마중나와 있었다. 자형이 차안에서 발판을 하나씩 딛고 내려올 때 “천천히요, 여기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고요” 라고 낮게 말을 건네며, 손을 내밀지는 않되 언제든 자형의 몸을 받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눈길에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다리 한 번 펴지 못하고 먼 길을 달려온 자형과 자형의 친구 상화 씨를 위해, 동생은 식당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회를 좋아하는 매형을 위해 정성껏 차린 상으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혹여 자다가 화장실이라도 가게 될까 봐 굳이 모텔에서 함께 잤다. 아침 해장국집부터 점심 옻백숙, 저녁 메뉴까지 하루의 결을 촘촘히 엮어 자형의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 준 동생은, 일을 하는 중에도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보이지 않는 보호막처럼 남편 곁을 지켰다.


광양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남편을 제자리에 데려다 준 상화 씨는 “어찌 그런 동생을 뒀냐!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누가 자형한테 그렇게까지 하냐며 놀라움과 감탄을 번갈아 쏟아냈다. 남편도 온전치 못한 몸으로 먼 길을 다녀왔음에도 피곤한 기색이 거의 없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처럼 대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 그의 마음에 작은 불씨처럼 온기와 희망을 더 해준 처남. 친동생보다 백 배는 낫다며 연신 감탄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묵묵히 동생을 향한 자부심을 나는 되새겼다.


문득 남편이 쓰러졌던 어느 날,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여 매형한테 큰 일이 생겨도 걱정 마. 내가 누나 보호자가 되어 줄테니까.”

그 말을 실제로 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진실은 말의 정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들었던 그때 나를 붙잡아준 존재가 동생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남동생이 셋이지만, 그중 하나는 마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고. 그는 힘겨운 순간마다 내 삶을 지탱해 준 든든한 기둥이었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나에게는 남동생 셋과, 오빠 같은 동생이 한 명 더 있다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남편의 태도를 보며 또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날 남편은 세 개의 발판을 오르고 내리며, 그동안 해 온 운동이 몸에 깊이 각인 돼 있다는 걸 처음으로 확신했다. 누가 괜찮다고 말해 준 게 아니라, 왼쪽 다리가 먼저 알아챘다. 마치 겨울 끝에서 아주 작은 새싹 하나가 흙을 밀어 올리며 봄을 예고하듯, 남편의 몸도 변화의 신호를 내고 있었다. 이후 남편은 운동에 한층 더 힘을 내기 시작했다. 날이 춥든 눈이 오든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효과를 몸으로 확인한 하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힘은 들어도, 몸이 전과 같지 않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기쁨일 것이다.



막냇동생에게 자형은 오래전부터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부터 자형은 막걸리 대접을 유독 살갑게 했고,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자형이 아들 몫을 대신하고 있다고 여겼다. 청년 시절 일을 배우던 때에도 동생이 서툴게 굴어도 자형은 한 번도 채근하거나 잔소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레 돈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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