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집'에는 불쑥 놀러와도 괜찮아
그림책 <마음의 집>
김희경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창비
나는 내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아마도 난 내 마음의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지 않아서겠지.
실제로 집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기는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어딘가 두었던 생활용품을 찾느라 하루 종일 집안을 뒤집었던 기억들은 다 있을테니.
마음도 그런거다. 뭔지도 모르는 이 억울함, 분도, 슬픔, 뿌듯함... 그런 것들은 내 마음의 집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책의 표지를 넘기면 면지 한 쪽 구성에 거실 비슷한 공간에 문이 보이고 그 틈으로 계단이 살짝 보인다. 그 문을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마 내 마음의 집에 비로소 들어가는 것이리라.
거실이라는 공간은 가족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고, 또 가볍게 방문하는 손님도 드나들지 않던가. 마음도 그런거다. 내 마음이지만 누군가와 공유하는 공간이 있기 마련인거다. 그 공간은 그런 채로 놓아두자.
나는 내 마음을 구석구석 아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마치 지금 살고 있는 우리집을 청소할 때 대충 보이는 곳만 청소하는 것과 같다. 저 서랍장을 열면 뒤죽박죽 된 잡동사니들이 있을 거라는 짐작이 있기에 섯불리 열 수가 없다.
마음도 그렇다. 어느 부분은 그냥 덮어두고 싶다. 어렴풋하지만 그걸 들쑤셔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잊고 있었던 감정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하루종일, 혹은 몇 일, 혹은 평생을 그 마음을 기억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내 마음 구석구석을 알아야 한다. 우리집 구석구석 정리정돈이 말끔히 잘 되어있지는 않아도 어떤 공간에 여유가 있는지 알고 있어야 새로운 무언가를 수납할 때 얼른 정리할 수 있듯 말이다.
내 마음의 어떤 방이 나를 쉬게 할 수 있는지, 두렵지만 해내야 할 마음을 내게 할 수 있을지 알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내 마음 집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 힐링의 공간을 찾아내자. 마음 구석구석을 살피며...
종종 유독 어떤 부분에서 옹졸한 내 마음을 본다. '내가 이 정도록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마음을 고쳐먹거나 좀 달리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그냥 아! 이 방은 참 좁구나, 하고 인정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좁은 방에서 내 지친 영혼이 잠시라도 머물동안 여유를 가져보는 거다.
좁을 수 있어. 다 넓을 수 없잖아. 오래 머물지 않으면 되잖아.
또 가끔은 한 없이 관대해지는 내 마음도 본다. '아, 나는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다. 우쭐해지고 미소도 지어진다. 그 마음에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다른 마음도 초대하고 싶다. 이렇게 넓은 마음을 가진 나를 자랑하고 싶다.
하지만 이 또한 잘 되지는 않겠지. 어떤 한 마음에 오래 머물도록 노력은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또 다른 나의 옹졸한 마음과 쉽게 맞딱드리게 된다. 그러니 넓은 방에 있을 때 만이라도 실컷 즐기자.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누구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지.
한 사람을 하나의 명제로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나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 전체적인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는 꼭 생각해 두어야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부분부분 인테리어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 집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전체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마음의 집을 작은 정원이 있는 아담한 한옥으로 꾸미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마음이든 신선한 느낌이 없다. 그동안 경험해 봤던 마음이라서일까? 어떤 마음은 너무 힘이 드니 피하게 되고 어떤 마음은 마주하기 힘드니 비슷한 마음으로 대체하고 또 어떤 마음은 잠시 왔지만 서둘러 내쫓아 버린다.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떤 마음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인지 나는 요즘 불쑥 생기는 마음이 참 좋다. 갑자기 뭉클해지는 장면을 오래 기억하려 애쓰고 갑자기 화가 난 마음을 연구(?)하기도 한다. 아무 마음도 생기지 않는 걸 인지하면 왜 그럴까 고민하기도 한다.
이렇게 불쑥 들어오는 마음이 있으려면 끊임없이 나를 자극해야 한다. 산책을 하고 독서를 하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게 내 마음의 집을 가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