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집중치료실,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정신 차려보니 섬에 갇혔다. NICU는 외딴섬이다. 삶과 죽음,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파도가 잔잔할 때는 찬란하도록 아름답지만 어둠이 들이닥치면 한 순간 실수로 죽음에게 생명을 내어줘야만 한다. 그런 곳에 난 어쩌다 보니 인생의 배를 정박해버렸다. 난 그저 평범한 20대 사회초년생이다. 누군가의 철부지 막내딸이며, 또 누군가에겐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시작한 동네 친구이며, 그저 그런 평범한 내가, 매일 죽음과 마주 서서 사력을 다해 보초를 선다.
간호사 집안에서 자란 나는 막연히 간호학과에 가게 되었다. (여기서 '막연히'는 참 무서운 물살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와 뒤늦게 깨닫는다.) 흔히들 의사 집안만 생각하지만 생각 외로 간호학과에 들어서면 심심찮게 간호사 집안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우선 간호사는 전문직에 안정적이고 취업이 잘되고 등등등, 고생은 하지만 요즘 같은 취업난엔 더없이 좋은 직업이란 일반적인 생각들. 옆에서 바라보는 간호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직업이라 생각될 수 있다. 그 일반적이지만 위험한 생각이 나를 비롯한 많은 무고한 청춘들을 이 위험한 섬으로 준비 없이 떠밀어 넣었을 것이리라. 요즘도 초롱초롱 마냥 해맑은 눈을 하고 이 곳 NICU로 발령받은 신규 간호사들을 마주한다. 버텨내리라 자신하며 웃으며 등장하던 그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기까지는 반나절도 안 걸린다.
따라서 혹시나 간호의 길을 생각하는 누군가나 자신의 자녀를 간호에 길로 보내야 할까 '막연히' 생각 중이신 부모님께서 이 글을 스쳐 지나가신다면 조금 한걸음 더 다가서서 진중하게 생각해보시길 바라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실 주변에서 말한다. 취업난을 겪어보지 않은 자의 푸념이라고. 너나 그렇지 자신은 '사명감'을 갖고 환자를 위해 헌신할 차세대 나이팅게일이 될 것이라고.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난 지옥 같은 취업난을 겪어보지도 못했고, 환자를 위한 특별한 사명감도 없이 간호사가 되어버렸다. 다만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주저리 늘어놓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간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간호'는 대학 4년 배워도 모른다. 간호학 개론 첫 수업시간에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이 하신 첫마디였다. 그것은 병동 구석구석 전력으로 달음질하며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으며 일해도, 돌아서면 환자와 의료진들의 요구와 불만에 시달리는 이들만 매일매일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니 모르는 길에 들어설 때는 조금은 더 신중하길, 경험을 미루어 조심스레 조언해본다.
NICU: Neonatal Intensive Care Unit의 약자인 신생아 중환자실. 이곳은 현재 내가 매일 출근하는 나의 작은 전쟁터다. 신생아. 일반적으로 중환자실 하면 중환이 많고 힘들겠다고 하지만, 앞에 신생아를 붙이면 느낌이 조금 달라지는 모양이다. 친구들의 흔한 반응은 '우와, 귀엽겠다'이다. 하하^^.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성악설을 믿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출생이 악하구나. 아기들은, 특히 아프고 배고픈 아기들은 매일매일 나라는 인간의 바닥을 마주하게 하고, 한계에 세차게 부딪히게 만든다. 아프니까, 아기인데 안됐으니까 등의 인간적인 마음은 '간호'가 숙련되어 빠르고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해나갈 수 있는 숙련자들에게만 허용된다. 그래서 흔히들 연차가 쌓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신규들은 열정과 초심으로 가득 차 아기들에게 지극정성일 것 같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모든 것이 정반대이다. 자신의 일을 감당해내지 못해 시간에 쫓기는 신규들은 아기들에게 다소 메마르고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바로 '소홀'이다. 한순간의 소홀은 아기들에게 치명적이다. 이 곳을 지옥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이다.
나는 이제 신규를 벗어나 서서히 일이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는 숙련자와 신규의 중간 정도라 생각된다. 그래서 신규의 마음도, 선임 간호사들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오늘도 신규 간호사가 바쁜 허덕임 와중에 한 아기의 정맥주사가 붓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아기는 다행히 선배 간호사가 발견하여 급하게 다시 정맥 라인을 잡았고 피부에는 큰 손상이 없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다행이었다. 성인은 부으면 아파하고 간호사에게 요구하지만 아기들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한번 더 보고 또 보고 신경 쓰고 조심하는 것이 전부일 테다. 심지어 아기들은 피부 손상이 어른들보다 쉽게 온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하면 붓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구적인 손상이 남을 수도 있다.
당신이 선배 간호사라면 어떻게 하시겠나. 신규를 혼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안일함이, 한순간의 소홀함이 아기에게는 치명적이니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사회에 이슈가 되는 '태움'의 시발점이지 않을까 하는 매우 조심스러운 생각도 해본다. 이러한 현실이 이 곳을 살얼음판보다 숨 막히게 만든다. 가끔은 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느낌도 든다.
그런 곳에 왜 왔냐고 묻는다면 난 한 번도 이 곳에 나의 의지로 온 적이 없다. 지원한 적도 없다. 난 '발령'을 받았을 뿐이다. 발령의 기준? 인력이 부족한 곳에 신규를 넣는 것이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사직자가 많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렌덤으로 인생이 결정되었다. 다른 곳으로 발령 요청은 3년이 한참 지나야 가능하며 3년이 지나도 위로 대기자 한가득이다. 난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곳에 붙어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사직자들처럼 나도 그만두면 그만이고 멋지게 사직서를 던지고 이 곳을 벗어나는 꿈을 가끔 꾸기도 한다. 그러나 난 어김없이 내일도 출근을 한다. 그리고 모래도 출근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난 일단 이곳에 도착한 이상 보물상자를 찾고 떠나고 싶은가 보다. 보물상자의 존재 여부도 사실 모른다. 그러나 이 섬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파헤치고 난 뒤에 보물상자를 찾는다면 기쁘겠지만, 없더라도 확신을 갖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뒤늦게 떠나왔는데 그곳에 귀중한 무엇인가 묻혀있었다면 지나온 항해가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그런 미련으로 난 어김없이 출근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어김없이 출근하는 용감한 모험가들 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투박한 일지가 가끔은 공감을, 가끔은 위로를 선사하길 간절히 바라며 난 오늘도 글을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