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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이 Feb 16. 2019

'엄마가 미안해'

아기를 보내는 모든 엄마들의 마음

 '첫눈' 같이 여린 생명이 땅에 닿는 순간 녹아 사라질 때가 있다. 그 그림자라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생명은 결국 신의 영역이라는 사실만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좌절과 절망의 순간 도착한 모든 어미들의 첫 절규는 언제나..."엄마가 미안해..." 단 한마디였다. 짧다면 짧은 병원 생활 동안 그 지옥의 순간을 나는 수없이 경험하였다. 인생에 단 한 번도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일상처럼 보게 되는 일. 그 일을 나는 하고 있다.


  '기억'에 가장 뚜렷이 남는 것은 역시 첫 CPR(심폐소생술)이다. 나의 담당 환자는 아니었다. CPR이 일어날 만큼의 중환을 아랫 연차가 맡는 일이 드물다.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여 물품 카운트를 하려 들어선 순간 그 서늘한 공기와 소름 돋는 긴장감은 잊을 수 없다.

"원 투 쓰리 브리스-원 투 쓰리 브리스-"

"인턴 콜 해요!"

"14시 03분 에피 들어가요!!"

 안녕하십니까라는 눈치 없는 나의 인사말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여러 의료진들이 한 아기의 생명에 매달리고 있었다. 처음 경험한 CPR은 그런 것이었다. 떠나려는 생명의 끝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것. 조금만 더 곁에 있어 달라고 질척거리는 것. 그럼에도 대부분의 생명은 세상과 멀어지는 길을 멈추지 않고 떠나간다. 몇몇만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하여 되돌아올 뿐이다.


 '마음'에 가장 뚜렷이 남는 CPR은 정든 아기를 떠나보냈던 순간이다. 모든 아기들이 소중하고 귀엽지만 인간인지라 모든 아기들에게 깊은 정이 드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돌고 도는 3교대 속에서 좀 더 많이 간호하고 나와 더 자주 만나진 아기들에게 남다른 정이 간다. 가끔은 일주일 동안 나의 가족보다 그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흔치 않지만 같은 팀을 일주일 내내 보게 되면 그렇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만을 다룰 때가 많다. 환자를 떠나보낸 사명감 깊은 의사의 오열 같은 장면들. 간호사로서 조금은 서운한 현실이다. 병원에 입원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잠깐 회진 때만 얼굴을 비추는 의사보다 때론 간호사를 더 많은 시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신생아 중환자실은 이보다 더 하다. 8~10시간을 그 아기 곁을 지키며 한 시간마다 혈압을 재고, 세 시간마다 수유를 하며 울 때마다 달려가 잠들 때까지 토닥여 주며 질병의 차도를 눈에 불을 켜고 관찰한다. 아기가 나아 퇴원하여 엄마 품에 안길 때까진 내가 엄마 역할 대신이라 늘 다짐하며 출근한다. 그런 아기의 새근새근 잠든 모습과 가끔 보너스처럼 선심 쓰듯 보여주는 미소. 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아기가 떠나가면 마음이 무너진다. 배 아파 낳은 어머니의 마음과는 도저히 비교할 순 없지만, 납작해진 EKG 모니터를 볼 때 내 마음도 같이 납작해지고야 만다.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은 무수한 반복을 통해 애초에 아기와의 심적인 거리를 두는 방법을 터득한다. 정성을 쏟지만 정을 쏟지 않는 비결을. 그래서 떠나보낼 때 여전히 아프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아직 그 비결을 터득하지 못했다. 매번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그리고 다음날도 어김없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출근하여 속도 모르고 울어대는 아기들을 또다시 간호한다.


 어린 생명을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의 접점은 '죄책감'이다. 우린 슬픔과 좌절, 절망과 비애 그 모든 마음들을 지나 결국은 죄책감이란 곳에서 만난다.  

 출산의 고통이 채 가시지도 않은 몸으로 그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아이의 죽음을 맞이하는 산모. 그리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지만 아내를 부축하느라 완전히 울어내지도 못하고 버티는 아버지. 난 그들의 눈을 아직도 마주치지 못한다.

 아기가 사망한 이후에도 바로 인큐베이터에서 내려놓지 않고 부모님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생전의 따뜻함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한다. 출산 후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아기를 떠나보낸 어머니의 품에 그제야 세상의 온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아기를 안겨드린다. 그 아기를 포에 쌓서 안겨드릴 때의 마음은 나의 부족한 문장들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다. 아기를 품에 안은 모든 엄마들의 외침은 미안하다는 말이다. 무엇이 그토록 미안할까... 조산은 어머니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아기의 질병도 어머니의 잘못이 아닌 것을. 그리고 그 생명을 붙잡지 못한 것도 어머니의 잘못이 아닌 것을... 그러나 모든 엄마의 마음은 다 같다. 백이면 백, 어머니들의 첫 외침은 미안함이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야 불 꺼진 방 안에서 홀로 뒤늦게 말해본다. 이모가 미안해... 죄책감을 안주삼아 밤새 고뇌한다.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말도 안 되는 말이란 것을 안다. 그러나 어떠한 긍정적인 생각도 통하지 않는 비애의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죄책감 속에서 어머니의 마음과 만난다.


NICU에서 여러 별들을 떠나보내며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생명은 결국 연단 기적이 만들어낸 '천운'이라는 것이다. 한 생명이 건강하게 태어나 무사히 병원을 벗어나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아무 일 없이 걸음마를 떼고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진학하는 그런 일들은 평범한 일상이 아닌 기적의 연속이다. 난 수많은 기적들을 딛고 지금 성인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을 이제 와 이곳에서 발견한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NICU란 무인도에서 발견한 작은 보물 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작은 보물을 나누고 싶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임을.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들어준 이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작은 불행에도 미안해하며 울어줄 '어머니'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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