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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이 Feb 26. 2019

NICU 간호사가 본 이대목동 사건

7명의 무죄

 지난 2017년 12월 16일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4명의 작은 생명이 세상을 동시에 떠나는 사건이 있었다. 아직도 그날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 참혹한 현장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지옥'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지옥'은 그 이후의 나의 출근날들이었다.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을 지닌 NICU 의료진들은 더 한껏 '예민'해져 있었고 나 또한 예민 지수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뉴스를 통해 관련 의료진 7명 모두 '무죄'를 판결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죄'. 참 거슬리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4명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인한 4 가정의 절망 앞에서 그 누가 '무죄'일 수 있단 말인가.




거둘 수 없는 의심

 물론 아직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스모프리피드'라는 지질 제제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한 개의 수액을 여러 환아에게 나눠 투여했고, 한 명의 간호사가 한꺼번에 여러 명의 것을 조제하면서 감염의 요인을 제공했으며 결국 패혈증으로 죽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그들의 변명도 들어 보았다. 똑같은 리피드 제제를 더 많이 투여한 아이에게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사망아 중 한 명은 패혈증의 원인균으로 추정되는 '시트로박터 균'이 검출되지 않아 이 추측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경력이 많지도 않고 경험이 많지도 않아서 무어라 말하기 상당히 조심스럽다. 또한 의료사고는 당장 내일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쉽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지도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석연치 않은 면들이 많다. 애초의 4명의 죽음이 같은 원인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패혈증이 CPR의 시작이 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4명이나 죽었어야 하는 것일까. 한 아이의 CPR에 몰두하느라 다른 아이들을 방치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CPR과정에서 실수로 인해 살릴 수 있는 아이도 보낸 것은 아닐까. 아님 스모프리피드가 아닌 다른 약을 투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은 유죄

 아이가 NICU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위험요소는 곳곳에 수없이 많은데 한 가지의 경우만 고려해서 그게 아니니까 '우린 결백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자신감이 아닌 비겁함일까.) 남의 일이 아니지만 쏟아지는 의심을 거둘 길이 없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의료수가를 아끼려던 병원 측과 의료환경을 관리하지 못한 질병관리본부와 주사제를 나눠 쓰라 했던 심평원의 과오가 낳은 비극이다. 그 누구도 여기서 무죄일 순 없다. 우리 모두가 유죄이다. 다만 누구도 책임지겠다 나서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4명의 생명은 떠났지만 남은 생명들을 위해 선물을 주고 갔다. 이대목동 사건 이후 우리 NICU에까지 선물은 전해져 왔다. 스모프리피드를 포함한 모든 약은 나눠 쓰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나눠 쓰기'는 간호사로서도 상당히 번거롭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어서 바뀐 뒤로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하게 되었다. 또한 24시간 동안 들어가던 스모프리피드는 12시간 만에 교체하도록 규정이 바뀌었으며 리피드뿐만 아니라 모든 수액이 24시간마다 교체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업무가 상당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더 안전한 의료를 아기들이 받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대목동 사건을 겪으며 또다시 느끼는 것은 NICU라는 섬에는 지뢰밭이 참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상당히 두렵고 떨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의심뿐이다. 내딛는 걸음걸음이 지뢰가 아니길 기도한다. 몇 번을 의심하고 망설이며 나 자신도 믿지 않기로 하는 '피곤한 길'을 선택한다.  피곤하더라도 나의 간호로 인해 환자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만 할 수 있다면 기어코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이 모든 간호사들의 숙명일 테다.  

 NICU에 와서 왜 여기 의료진과 간호사 선생님들은 유독 예민하고 깐깐하며 너그럽게 넘어가는 일이 없까 하며 불평불만했던 적이 있었다. 다 그들만의 생존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서서히 그런 길에 들어서는 나 자신을 보며 이 길을 더 가야 하나 이쯤 돌아서야 하나 수없이 망설인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며 7명의 관계자와 그들 뒤에 숨어 있는 '관리자'들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일 테며 또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일 수 있고 아이를 가진 어머니 일 수 있을 당신에게.

 당신은 정말 '무죄'입니까?






  사진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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