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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이 Mar 11. 2019

누구를 위한 완모인가

모든 엄마들의 염원-‘완벽한 모유수유’

황달로 인한 재입원
 어느 날 신생아실에서 정상아로 퇴원한 아기가 황달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재입원하였다. 온몸이 노랄 정도로 황달이 심했다. 도착하자마자 광선치료를 10개 시작하였는데 한 시간 뒤의 황달수치와 그다음의 황달수치도 떨어질 기미가 안보였다. 나와 담당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몇 시간 내에 황달의 차질이 보이지 않으면 뇌손상의 위험이 높아지고 모두가 그토록 꺼려하는 ‘교환 수혈’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교환 수혈’은 말 그대로 혈액을 ‘교환’하는 것이다. 일반 수혈과 달리 혈액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혈액을 빼내서 새로운 혈액으로 교환해야 하는 까다로운 치료법이었다. 한마디로 아기와 의료진 모두에게 ‘리스크’가 큰 일이었다. 나는 10개의 광선을 해 집고 들어가 열심히 아기의 자세를 바꿔가며 구석구석 광선을 쬐어주었다. 아기의 피부색이 노란색에서 거무스름한 색으로 태닝 될 때쯤 다행히 세 번째 검사 결과는 차도를 보였고 점진적으로 황달 수치는 떨어졌다.


원인은 수유 부족
 황달은 아기들이 출생 3~7일까지 간이 미숙하여 나타나는 생리적 황달, 즉 매우 정상적이고 가벼운 황달이 있고 출생 24시간 이내 급격하게 나타나는, 또는 10일 정도가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병리적인 황달이 있다. 병리적 황달은 원인이 너무나도 많은데 나와 담당의들은 큰 의심 없이 모두 ‘수유 부족’을 예상했다. 즉 수유량의 부족으로 탈수가 생겨 이 것이 황달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어렵지 않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산모 때문이었다.

 아기의 어머님은 분만실에부터 유명하셨다. 일명 ‘자연주의’+ ‘신천지’ 산모 셨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육아가 뭔지 사실 전혀 알지 못한다. 모든 말에 앞서 알지도 못하는 자연주의 육아법을 함부로 비난하려는 뜻이 없음을 밝힌다. 다만 의료진들이 이 산모를 기억한 이유는 이전의 자연주의 산모들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아기의 수난은 ‘모자동실’을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분유는 절대로 아기의 몸속에 한 방울도 허용할 수 없다며 아기가 깰 때마다 먹이시겠다고 하셨고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다만 3시간마다 순회를 가면 기저귀는 대변이 새어 나와 포를 적실 때까지 그대로였으며 잘 잔다는 이유로 3시간이 훌쩍 넘어도 수유를 하지 않으셨다. 아기가 잠만 자는 것은 배가 고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탈수되어가면서 활동력이 쳐지는 것일 수 있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자신의 아이는 태교가 완벽해서 잘 자는 것이라는 황당한 말만 돌아왔다. 담당의가 설명하고 선임 간호사가 다시 설명해도 결과는 동일했다. 굳이 잘 자는 아기를 건드리는 것은 ‘자연주의’가 아니라며 성을 내기 일수였다. 그리고 끝내 의료진들의 권고가 듣기 싫었는지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일 만에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황달은 모유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연주의’에 입각한 완전 모유수유에 가려 아기가 며칠을 얼마나 굶는지 들여다보지 못한 탓이었다.  


모든 엄마의 염원, ‘완벽한 모유수유’
사랑스러운 나의 아기에게 좋은 것 중에서도 좋은 것만을 주고 싶은 것이 모든 엄마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모유수유는 그토록 꿈꾸는 ‘완벽한 육아’의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일 것이다. 위에 언급한 산모의 ‘자연주의’도 그런 마음의 일종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좋은 육아법은 없을까 나름의 고민과 연구의 결과일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것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으리라 믿는다. 다만 ‘완벽한 육아’라는 타이틀에 가려 정작 가장 소중한 ‘아기’는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어떤 엄마들은 다른 이보다 모유의 양이 적으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기에게 연신 미안하다며 자책하시는 경우도 있다.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볼 때 사실 조금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모유가 분유보다 이로운 점이 많고 정부와 병원 차원에서 모유수유를 극도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산모들에게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입장이지만, 사실 분유가 아기에게 ‘해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신생아들을 보아왔지만 분유를 먹고 자란 아기가 모유를 먹고 자란 아기보다 잘 크지 못한다거나 잔병치례가 더 많다거나 하는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되려 위의 이야기처럼 지나치게 모유만을 고집하다가 탈수로 입원하는 케이스만 있을 뿐이다.

 ‘완벽한 수유’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산모의 모유 정도와 아기의 건강을 고려하여 각자의 아기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수유’를 해야 한다. ‘육아’에 대한 의욕이 ‘아기’보다 앞서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또한 자신의 방법이 가장 최고의 방법인 마냥 자랑할 필요도 없고 다른 이를 부러워하며 아기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인큐베이터에 누운 아기에게 엄마 대신 ‘대리’ 수유를 하는 나로서는 아기 입장에서 가장 완벽한 수유는 엄마 품에서의 수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유의 질은 모유냐 분유냐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나 편안한 상황에서 아기와 교감하며 그 순간을 ‘애착’의 순간으로 남기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유는 아기에게 있어, 엄마의 뱃속에서의 10달간 해왔던 교감을 이어나가는, 3시간마다 찾아오는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니 다른 엄마보다 더 좋은 걸 줘야지 하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고 행복한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마음으로 수유 시간을 맞이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완벽한 수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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