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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이 Mar 19. 2019

네가 나의 딸이었다면

희연이에게

희연아, 안녕

우리 희연이 사실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일주일 됐을까. 다른 팀에 주수 추정이 안 되는 20살 미혼모의 아이가 입원한 사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어. 그러나 어느 때처럼 미혼모의 아이는 보고 싶지 않았어. 마음이 아플 것이 뻔했기에. 마주하기가 두려웠지. 그러다 그 팀을 내가 보게 될 줄이야. 너를 처음 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검은 머리숱에 동그란 눈, 울고 있음에도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오동통한 팔. 누가 봐도 미숙아는 아니었지만 정확한 주수는 사실 아무도 모르기에 미숙아 분유를 계속 먹였었지. 담당의와 옥신각신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어. 근데 희연아, 살다 보면 태어난 주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일찍 태어나도, 늦게 태어나도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정하니까, 우리 희연이는 그런 거 생각할 필요 없어.

희연이란 이름도 사실 내 마음대로 붙인 거란 걸 알아. 처음에는 너의 어머니의 이름으로 너를 불렀었지. 그러다 점점 그게 듣기 싫어졌어.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너를 저버린 이를 네가 떠올리게 될 거란 생각에 점점 싫어지더라. 그래서 온 병동 사람 다 들으라고 크게, 앞으로 넌 희연이라며 내 마음대로 외쳤지. 어쩐지 너도 그걸 더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어. 내가 희연이라고 불러줄 때마다 가끔 헤벌쭉 어여쁜 미소를 보여주었거든. 근데 희연아, 살다 보면 이름도 아무것도 아니야~사람마다 한두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아. 가는 곳마다 이름이 바뀔 수도 있고. 이모만 해도 이름이 두 개인걸? 우리 희연이도 이름이 살다가 바뀔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너를 어떻게 부르냐가 아니야. 네가 누구냐이지. 그것만 잃지 않으면 돼. 우리 희연이는 잘 웃고, 잘 자고, 행복해할 줄 아는 그런 아기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날 거라 믿어. 그래, 그런 게 중요한 거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날은 너 대신 너의 어머니를 미운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어. 근데 잔뜩 힘주고 바라본 그 사람은 그냥 20살의 너의 얼굴을 한 작디작은 소녀였어. 미운 눈을 한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가녀린 아이였어. 받아야 하는 이가 줘야 하는 이로 자라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다. 시간과 정성과 각오와 희생이 따라야 하는 일인데 그 소녀는 너무 모든 것이 갑작스러워 보였어. 그 대신 난 그 아이가 이 순간 너에게 쏟지 못한 마음을 내가 대신 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니까 희연아, 절대 같을 순 없겠지만 넌 아기가 태어나 몇 주간 받아야 할 마음을 그 소녀 대신 나한테 받았어. 그러니 살아가면서 전혀 속상해하지도, 원망스러워하지도 않긴 힘들겠지만 조금은 그 마음이 덜 하길 바래. 적어도 넌 사랑받기에 충분한 아기였기에 어느 정도 그 사랑을 받았단 사실만을 알길 바래.

 희연아 사실 오늘 너에게 편지를 썼는데 떠나가는 길에 전하지 못했어. 이 편지는 너의 입양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쓴 편지란다. 마냥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 그 옆에서 너는 고래고래 울고 있었어. 나도 인계를 받으며 몰래 눈물을 훔쳤어. 그리고 인계가 끝나자마자 너를 달래러 갔지. 그러나 어쩐지 그날따라 울음을 멈추지 않더라. 품에 안아주면 그래도 얌전해지던 너였는데. 그래서 우린 구석에서 같이 울었어. 난 너의 앞에 주어진 삶이 안쓰러워서 울었어. 그리고 넌 아마 울움이 멈추지 않아 울었을 거야. 근데 희연아, 가끔 그렇게 마음껏 울어낼 줄도 알아야 해. 감정을 참는다고 어른스러운 게 아니거든. 힘껏 울고, 마음껏 울어내고, 또 찾아오는 행복에 충분히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스러운 거야. 앞으로 우리 희연이는 그렇게 지금처럼 자신에게 솔직한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희연아, 마지막으로 난 너를 안고 달래며 생각했어. 네가 나의 딸이었다면, 참 좋았을걸. 이모는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단다. 만약 우리 희연이가 이모 딸이었다면 온 주변 사람들이 기겁했겠지. 우리 가족도 모두 기절초풍했을 거야. 그래도 너와 난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행복했을 거야. 우린 그렇게 우리의 이기적인 행복을 누리며 살았을 거야. 난 당장에 병원을 때려치우고 24시간 너만 품에 안고 있을 수 있었겠지. 다른 아이도 간호해야 하기에 칭얼거리는 널 어쩔 수 없이 내려놓고 가야 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럴 때면 정말 짜증 날 정도로 속상했단다. 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여느 엄마와 딸처럼 티격태격했을 거야. 넌 분명 반찬 투정을 했겠지. 난 요리를 매우 못하는 엄마였을 거니까. 그럴 때면 난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하며 매우 상투적인 엄마 멘트를 날렸을 거고 넌 듣기 싫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을 테지. 참 별거 아닌 일상인데, 왜 그런 일상들이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걸까. 서로에게 소홀해질 정도로 서로의 존재에 당연해지는 그 일상마저 눈 부셔 보이는 이유는 뭘까.

 마지막으로 희연아, 이모는 끝내 너에게 이모의 편지를 전하지 못했어. 그저 상황이 그렇게 따라주지 못했다는 변명만 남길 뿐이야. 그러나 이모는 굳게 믿어. 이모 같은 사람도 사랑하고는 못 배길 정도로 우리 희연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기에 분명 좋은 가족을 만날 것이란 걸. 나보다 더 너를 끔찍이 아껴줄 엄마와 아빠를 만날 거란다. 그렇기에 어쩌면 네가 나의 딸이 아니라 다행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어. 그 대신 네가 태어나 혼자가 된 순간에도 혼자가 아녔음만 알아주길 바랄게. 너의 옆엔 적어도 함께 울어주는 이가 있었음을. 그리고 정신없이 바쁜 업무에도 너에게 한눈팔려 정신 못 차리는 한 간호사가 있었다는 것을. 희연아 언제나 지금처럼 잘 웃고 잘 우는 어여쁜 눈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길 기도할게. 충분히 행복하길 바랄게. 안녕.


미쳐할 말을 다 전하지 못한, NICU 끄적이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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