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끄적이 Aug 02. 2019

첫 직장의 마침표를 찍다.

NICU라는 무인도를 떠나가다

 드디어 NICU(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의 표류를 끝내고 새로운 섬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이었다. 시작도 끝도 8월에 하게 된 난, 앞으로 덥디 더운 이 계절이 돌아올 때면 어렴풋이 이 곳이 떠오를 것 같다. 더운 여름날 더 더운 인큐베이터에서 아기와 씨름하던 그런 웃픈 기억들 말이다. 생존하기 위해 치열했지만 가끔씩 저너머로 지는 노을처럼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추억들도 분명 있었다. 열악한 무인도임을 알면서도 정박하고 살아볼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NICU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며, 첫 글에서 ‘이 무인도에서 힘들더라도 보물상자를 찾고 떠나고 싶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얼떨결에 떠밀려 오게 된 것처럼 또 얼떨결에 떠밀려 가게 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보물들을 찾았다.


보물 1. 동기들 

 서툴고 낯설어 가까워지기 힘들었던 10명이 넘는 동기들. 처음에는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들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은 전우가 되어 든든하게 나의 옆에서 함께 싸워주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가는 시점에서도 서로를 향해 뜨거운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동기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나도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NICU에서 행복할 때 함께 웃어주고 슬플 때 함께 울어주며, 억울할 때 나보다 더 크게 화내 주던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내가 겪고 견뎠던 모든 것들을 함께 해준 그들이 어디 가서든 여기보다 더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해주지 못하고 이 무인도에 남겨두게 된 최후의 2명의 동기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응원의 말을 전한다.


보물 2. 신생아들

 무엇보다도 여기서 발견한 가장 큰 보물들은 결국 아기 들일 것이다. 나의 서툰 손길을 거쳐간 수많은 아기들을 전부 기억할 순 없지만 가슴 저릴 만큼 애틋하고 눈물 날만큼 사랑했던 기억들은 선명히 마음속에 자리한다.

 너무 아픈 통증에 24시간을 울던 유진이를 다른 아기들을 볼 때는 울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어 너무 미안했다. 눈치가 보여도 윗년차들에게 유진이를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런 유진이를 겨우 달래는 데 성공할 때 찾아오는 기쁨은 잊지 못할 것이다. 유진이의 편안한 얼굴처럼 그 순간만큼은 나의 마음도 편안해졌었다.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던 희연이는 더더욱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아이의 피부색, 머리카락, 눈빛과 손짓, 작은 움직임까지도 아직 생생하다. 정말 사랑 그 자체였다. 이 세상 어떤 아기들보다 더 사랑받고 또 사랑받으면서 살아가길 순간순간 기도한다.

 또 내가 처음으로 맡은 최고 중환 다은이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생사를 오가며 저혈당과 저혈압으로 나를 정말 두렵게 했었다. 그 아기의 혈압이 떨어질 때면 내 심장이 멎고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지금은 밥도 잘 먹고 혼자서 숨도 잘 쉬며 퇴원을 앞두고 있다. 다은이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크다. 잘 견뎌주어 고마워 다은아. 마지막으로, 안타깝게 이 곳을 짧게 스치고 하늘로 간 수많은 아기들, 전부 이 곳에 쓸 순 없지만 가슴 깊숙이 오래 간직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NICU에서 난 아기들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분명 미운 순간들도 있었다. 집에서 쉬려고 누우면 아기들의 울음소리와 모니터 알람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아 괴로운 순간들도 많았다. 발버둥 치는 아기들에게 발길질도 당하고 오줌 세례도 수차례 당했다. 면회시간이면 쏟아지는 보호자들의 불만과 짜증에 아기까지도 미워 보이는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서서히 잊히게 되고 난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가며 아기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아붓고 있었다. 아기들을 ‘업무’가 아닌 ‘사랑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일이 밀리고 결국 퇴근을 늦게 하게 되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간호’ 하나라도 더 해주는 것에 양심을 걸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아기들이 누워있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이지만 아기와 보호자에게는 결코 당연한 일상이 아니기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난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아기들이 너무나도 소중한 만큼 나 자신도 소중한 존재이기에 이번만큼은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군대 같은 위계질서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이 왜 없었을까. 그동안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여러 일들을 견뎌왔다. NICU라는 이 좁은 사회 속에서만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생각인지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기에 부당하지만 이해하려고 하였고, 이 곳에서의 그들만의 질서에 맞추어가려고도 애썼다. 그러나 한번 내어주자 더 많은 것을 내어주길 요구해왔다. 인력이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고 무리한 조건에서도 아기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책임져야 하는 순간 앞에서 부당하게 책임을 떠맡아야 했다. 누군가로부터는 아래 연차라는 이유만으로 고함과 밀침을 당했다. 그리고 아래 연차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상황 앞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았다. 팀장은 덮기에 바빴고 가해자는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하기에 바빴다. 나는 그래서 이 곳을 떠나기로 했다. 더 이상 이런 부당한 대우에 스스로를 버려두며 방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말했다. ‘사회생활은 전부 똑같고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더 이상 나 자신이 다쳐가며 이 곳에서 이기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정말 다 똑같은지, 간호사가 더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정말 없는지, 스스로 찾아 나서고 싶어 졌다.

 앞으로 이 항해 끝에 또 어떤 섬이 나타날지 모르겠다. 그곳이 여기보다 치열할지 아름다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부디 다음 정착지는 이 곳보다 덜 치열하고 더 아름답길 간절히 바라본다.




P.S. 작가의 말

그동안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많은 구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좌충우돌 NICU 표류기>는 저의 NICU 사직으로 이렇게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일하며 글 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댓글로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의 글과 함께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글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삶 속에도 치열함은 덜하고 아름다움은 더하며 행복만 가득하길 진심을 담아 바랍니다.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글로, 그리고 더 나은 글로 찾아뵐 수 있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1화 신생아로 살아간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