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는 있고 우리에게는 사라지는 것들
누구에게나 신생아기는 존재한다. 어른으로 태어나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신생아로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존재했던 신생아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떠했는지는 이후 자식을 낳거나 다른 신생아들을 보며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매일 수많은 신생아들을 마주하다 보면 가끔 스스로의 신생아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성장’이란 단어가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중 첫 번 째는 ‘약함’에 대한 인정이다.
연약함을 인정한다는 것
아기들은 참 여린 존재들이다. 밥도, 화장실도 잠자는 것도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아기들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는 것이다. 어느 아기도 ‘아, 선생님 이건 제가 스스로 해보겠습니다.’하며 나서지 않는다. 그들이 배가 고프고, 기저귀가 불편하고 잠을 자고 싶을 때 하는 것은 단지 ‘다른 이를 부르는 것’이다. 인큐베이터 밖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울면 부리나케 누군가 달려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준다. 처음에는 그런 그들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밥을 먹고도 더 찾으며 고래고래 우는 아기들을 보면 가끔 ‘왜 이렇게 당당해?’ 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그만큼 그들은 스스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아기들을 바라보다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신생아 시절의 당당함은 온대 간대 없고 지금은 무엇이든 혼자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등바등하는 모습만 남아 있음을 발견한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것은 민폐를 끼치기 싫은 배려심보다는 자신의 연약함을 들키기 싫은 옹졸한 자존심임을 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음을 매일 아침 당차게 울어내는 아기들을 보며 깨닫는다. 연약함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강함’ 임을 신생아들은 알고 있는 듯하다.
다른 이를 위한 눈물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을 잘하려면 지켜야 하는 중요한 수칙이 하나 있다. 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아기가 깨기 전에 무조건 먼저 재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신규들이 다른 일을 한다고 우는 것을 조금 늦게 달래주러 갔다가는 이미 온 병실 아기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그것은 정말이지 지옥의 합창이다. 아기들은 그렇게 언제나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에 같이 따라 운다. 한 명이 옆에서 우는데 평온하게 자는 아기는 정말 드물다. 왜 잘 자다가 따라 우는 것일까 짜증스럽다가도 문득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다른 이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가?’ 싶을 때가 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적 길가에 죽어있는 비둘기를 보곤 너무 마음이 아파 비둘기를 끌어 앉고 울다가 부모님을 기겁하게 했던 적이 있었다. 역 앞에 앉아 있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놓고 오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때의 오지랖 넓고 눈물 많던 아이는 사라지고 그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메마른 사람이 되어있진 않은가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어른으로 성장했다기 보단 퇴보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기들을 보다 보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울음이 참 소중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도 아기들을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은 그들의 눈부신 성장이다. 매일매일 출근하지만 어제와 같은 아기가 없다. 어제보다는 자라 있고 성장해 있다. 아픈 아기들은 병을 이겨내고 있으며, 호흡기를 의지하던 아기들은 스스로 숨을 쉬는 법을 익히고 있다. 밥을 소화시키지 못했던 아기는 어제보다 더 많은 양을 소화하고 있으며 그렇게 아기들은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간다. 아기들은 당연히 커가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어제와 같은’ 오늘의 나에게 얼마나 스스로가 익숙해져 있는지 발견한다. 피곤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지도 않고 변화가 싫어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기도 싫다. 물론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아직도 성장하고 계신 눈부신 이들이라 말하고 싶다. 아기들을 보고 있으면 성장하는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낀다. 출근하여 어제와 전혀 다르게 성장해 있는 아기들을 보면 경의롭고 또 한편으론 부끄러워진다. 나 자신은 언제나 한걸음 더 나아가기보단 멈춰있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주저함은 어른들에게만 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론 신생아 때의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담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멈춰있기보단 나아가길, 익숙함보단 낯섦을 선호하는, 계속해서 ‘성장’ 해 나가는 어른으로 오늘도 ‘성장’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