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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이 Aug 17. 2019

마지막 아기를 보내며

별은 그렇게 하늘로 돌아갔다

  끝났다고 안도한 순간 또 한 번에 거센 파도에 휩쓸렸다. 마주하기 싫은 순간을 난 또다시 맞이해야 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존재하는 이 곳 NICU에서는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시간

  내가 떠나보낸 별은 태어난 지 마흔여덟 번째 시간을 끝내 맞이하지 못했다. 별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중 마지막 8시간은 오롯이 나와 함께였다. 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하지 않은 것일까. 삶의 길이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이렇게 짧게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별들은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해답이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그렇다. 정신없이 마주한 순간들이 아기에게는 마지막 시간들이기에,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오래 함께 한 사람이 나이기에, 쉽사리 기억들이 흐려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일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가 보다. 함께한 시간은 8시간이었지만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나의 마음에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10달을 한 몸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마음 한편에는 평생 자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미련

  꺼져가는 촛불 같은 생명 앞에선 언제나 묵직한 돌덩이가 마음속에 생겨난다.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옮겨지지 않는다. 희망이란 얇은 종이 위에 무겁게 자리 잡아 희망조차 쉬이 접어지지 않는다. 아기의 생명이 밑 빠진 독에 물처럼 새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난 그 돌덩이를 치우지 못해 아기를 귀찮게 했다. 이것저것 부질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혹시나, 혹시나...’를 주문처럼 읊조리며 부질없는 짓들을 이어나갔다. 그것마저 안돼자 아주 구차한 지경까지 이르러 이내 별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이모랑 조금만 더 있자고. 조금만 더 힘내 보자고. 세상 생각보다 살아볼 만하다는 어이없는 거짓말까지 덧붙였다. 별은 내가 아주 많이 귀찮았나 보다. 소용이 없다 싶자 대상을 바꾸어 신께 매달렸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차라리 다른 이의 생명을 뺏으라는 못된 기도도 하게 되었다. 그 기도 또한 심히 거슬렸나 보다. 아기는 결국 21:24분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구멍

  미련이 떠나간 자리에는 꾸깃꾸깃 찢긴 희망과 커다란 구멍이 남는다. 그 구멍을 가득 채울 기세로 눈물이 쏟아졌다. 떠난 뒤에 잘 보내주는 것 까지도 나의 일이기에, 제대로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보다 더 슬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꾸역꾸역 참아보았다. 참으며 검푸르게 변한 별을 그동안 괴롭게 했던 인공호흡기와 수많은 주사와 장치들을 제거했다. 깨끗하게 닦고 옷을 입혀주었다.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별의 얼굴은 처음으로 평온해 보였다. 고통이 서려있지 않았다. 그 표정은 마치 별이 남은 이들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어머니는 끝내 아기를 보러 오지 못했다. 아버지만 덤덤히 아기를 안아 들었다. 아버지를 차마 마주할 수 없어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하찮은 말들로 섣불리 위로할 수 없어 어떠한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저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구멍을 눈물로 함께 채웠다.  


이 별

  아기를 보내고 나면 어떤 숙련된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날을 살아가고 어떤 미숙한 이들은 두려움에 도망친다. 나와 같이 미숙하지만 숙련된 척하는 이들은 타격을 입은 채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낸다. 신기한 것은 별이 떠나간 뒤 만나는 모든 일상들은 한없이 소중해진다는 것이다. 쉬도 때도 없이 울어 간호하기 힘든 아기도 마냥 기특하고, 밥을 먹고 기저귀만 봐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퇴원을 준비하는 아기들은 너무나도 고맙고 퇴원은 멀었지만 치료과정들을 견뎌주는 아기들은 더 고맙다. 응급상황에서 작은 일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뛰어다닌 후배들은 대견하고 노련하게 나를 이끌어준 선배들은 존경스럽다. 함께 울어준 동기들은 애틋하고 묵묵히 지켜봐 준 가족들은 따뜻하다.

  아직 구멍 난 가슴 한편이 여전히 허전하고 쓰리고 울컥하며 일렁인다. 함께 숨죽여 물도 밥도 휴식도 마다하고 애끓었던 8시간이 아려온다. 별의 마지막 얼굴도 문득문득 피어오른다. 그러나 다시 그 순간이 와도 난 그렇게 그 아이 옆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떠난 별에게 정말 고마운 것은 주변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이 일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준 점이다. NICU를 떠나면서 다른 부서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고민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이번 일로 확실해진 것은 아기들 곁을 지키며 간호할 수 있는 이 일이 너무 소중하고 보람되고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나에게 짧은 순간이지만 와준 별에게 말하고 싶다. 반가웠어. 정말 고마워. 그리고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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