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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Aug 23. 2024

용식이(7화)

남자는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는 자였다. 카피와 상술에 능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다른 이가 만든 옷의 디자인을 똑같이 카피를 하고 교묘하게 질 나쁘고 저렴한 중고 원단을 구매하고, 대량생산을 이유로 옷 공장에게는 공임비를 깎아 이윤을 취했다. 예를 들어  원단, 공임비, 인건비 등등을 고려해 만 원짜리 옷을 만들면, 이자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삼천 원짜리 옷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소매업들에게 원하는 옷을 가져오면 더 싸게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면 소매업자는 잘 팔리는 옷을 그에게 가져간다. 남자는 저렴하게 만든, 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만들어 두 배의 이윤을 취한다. 도매시장의 민낯이었다.


매출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용식이는 계속해서 신상을 내보였지만 처음에 좋았던 반응은 얼마 안 가 뚝 끊기고 말았다. 저렴한 카피본이 나왔기 때문이다. 용식이는 법률자문을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뿐더러 약간의 디자인만 수정한다면 소용이 없었다. 용식이는 좌절했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그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어느 날 밤, 용식이는 매장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 매장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가운데,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용식이는 무당의 지시대로 인형을 소중히 보관하고 매일 밤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며칠 지나자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주를 받게 된 그 남자에게는 알 수 없는 병이 찾아오고, 불운이 연속으로 닥쳤다. 갑자기 매장 안의 조명등이 머리 위에 떨어져 피가 나기도 했고, 도둑이 들어 그날 매출액을 모두 훔쳐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유 없이 길바닥에 대변을 누기도 했다. 그의 가족들도 이유 없이 아파오고 다치기도 했다. 그 남자의 부인은 인도를 걷다가 지나가는 차가 갑자기 덮쳐 사고를 당했고, 아들은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이 용식이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그 남자의 매장은 문을 닫는 날이 많아졌다. 물건을 구매할 수 없던 소매상들은 어쩔 수 없이 용식이의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저주를 받을 때마다 용식이의 매출은 늘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용식이 자신도 점점 이상한 증상을 겪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복수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자신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주를 받는 사람과 저주를 하는 사람 모두 아프게 되었다.



어느 날, 용식이는 그 남자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는  건강 악화로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용식이는 이것이 저주의 영향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묘한 공허감에 사로잡혔다. 복수에 성공했다는 생각에도 전혀 좋지 못했다.


그날 밤, 용식이는 다시 인형 앞에 앉았다. 주문을 외우는 도중, 인형이 그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형의 섬뜩한 미소는 더 이상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마치 그를 조롱하는 듯한 웃음처럼, 공포에 사로잡힌 용식이는 인형을 서랍 속 깊숙이 감췄지만, 그날 밤 다시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용식이는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당의 말대로 저주가 자신에게도 되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한 채, 복수에만 집착했던 것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조차도 용식이의 변화를 감지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용식이는 점점 더 쇠약해졌고,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해져 가고 있었다.


용식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당을 다시 찾아갔다. 무당은 그의 모습을 보고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주가 이미 진행 중이군요. 이 상태에서 저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인형을 태우고 주문을 다시 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주를 받은 사람도, 당신도 큰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


용식이는 무당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를 통해 얻은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복수의 쓴 맛을 보고, 이제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다.


용식이는 무당의 지시에 따라 저주를 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저주 인형을 불태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를 준비했다. 촛불, 향, 그리고 무당이 주입한 주문서가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무당은 엄숙한 표정으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용식이는 인형에 불을 붙였고, 인형은 서서히 타들어 갔다. 그 순간, 용식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복수심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무당의 경고대로, 저주를 풀기 위한 대가는 컸다. 저주가 풀리자마자 용식이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불안해했지만, 더 이상 복수에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용식이는 다시 어둠 속에서 깨어나 동대문으로 출근할 준비를 했다. 밤의 적막함 속에서 그는 자신의 결심을 다졌다. 복수를 포기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의 마음속에 증오와 분노를 남겨놓았다. 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식이는 동대문으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끊임없는 폭력과 비상식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언제나 누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용식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또 다른 다짐을 새겼다. 자신이 성공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면, 그도 그 틈을 이용하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용식이는 이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비열한 방법도 써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무당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진정한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했던 말. 용식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둠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성공을 위해서라도, 그는 정의와 양심을 지키기로 했다. 그가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은 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동대문에 도착한 용식이는 분주한 시장 속에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세상이 변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용식이의 삶은 이제 복수와 증오가 아닌, 자기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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