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경고음에 민지훈은 잠에서 깨어났다. 핸드폰 화면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장이 떠 있었다.
-긴급속보-
태양이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바라보지 마십시오. 정부의 추가 지침을 기다리십시오.
“태양이 춤춘다니…”
귀신 씻나락 까먹는다는 표현도 이럴 때 쓰이는 걸까.
민지훈은 성균관대학교 천문대의 부교수였다. 전날 밤까지도 그는 무탈한 태양의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비틀대며 TV를 켰다. 뉴스 화면엔 앵커 박현우가 창백한 표정으로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태양이 공전 궤도를 이탈해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례 없는 현상입니다. 저희 글로벌 뉴스 네트워크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민지훈 교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지훈은 몸을 굳혔다. 대중 앞에 서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이 세계가 흔들리는 지금, 그를 필요로 하는 건 분명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 저희 관측소에서도 이상 징후를 확인했습니다. 현 단계에선...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앵커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이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습니까?”
“아뇨. 인류 역사상 최초입니다. 분석을 마치는 대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지훈은 연구실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기상청 특별 태스크포스의 이소라 연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힘차게 들렸지만 눈동자엔 어딘가 멍한 불안이 스며 있었다.
“민 교수님,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 태양의 움직임이 이미 기후를 급변시켰어요. 작년부터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은 하루 사이 영상 50도와 영하 20도를 오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죠. 반복된 이상 기후 경고에, 모두 무뎌졌어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엔 스키, 오후엔 해변. ‘익스트림 데이 투어’가 서구 관광 트렌드였으니까요.”
그때였다. NASA로부터 화상 회의가 연결됐다. 모니터 속에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에밀리 젠슨의 얼굴이 떠올랐다.
“교수님, 연구원님. 저는 이번 현상이 우주 시뮬레이션의 버그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뮬레이션... 버그요?”
“우주가 거대한 프로그램이라면, 이 현상은 물리 법칙의 변화가 아닌 오류로 설명될 수 있어요. 점점 그쪽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죠.”
그 가설은 터무니없게 들렸지만, 민지훈은 부정하지 못했다. 그 역시 중력파동과 태양지능 이론을 검토 중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불가해했고, 세계는 비현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태양의 이상은 인간보다 먼저, 식물이 감지했다. 해바라기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방향을 틀다 목이 꺾여 죽었고, 밤에 피는 꽃들은 낮에 피었다가 시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라자스탄.
농부 라힘 칸이 세계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칸 씨, 밀밭에서 하루 안에 작물이 자라고 시들었다고요?”
“네. 처음엔 공포였죠. 하지만 이건 기회였습니다. 하루에 세 번, 수확하고 뿌리고... 농업이 바뀌었습니다.”
인류는 혼란에 빠졌다. 도로 위에는 방향 감각을 잃은 새들과 태양 그림자를 피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이 초현실은 곧 일상의 농담이 되었다.
‘춤추는 카레’
태양 아래서 세 번 익었다가 다시 날것으로 돌아가는 기이한 카레가 세계를 휩쓸었다. 거리 음식 노점상 아니타 샤르마는 불 없이 태양열로 조리하는 ‘태양 비리야니’를 만들어냈다.
“불도, 연료도 필요 없어요. 춤추는 태양이 셰프니까요.”
태양은 모든 것의 핑계가 되었다. 회사는 출근 시간표를 태양 위치에 따라 바꾸었고, 사람들은 앱을 통해 태양이 멀어지면 급히 밖으로 나가 일하고, 가까워지면 실내로 숨었다.
태양은 하나의 신이었다.
사람들은 그 움직임에 맞춰 춤추는 탄두리, 점프 카레, 순간 짜파티를 만들어냈다.
각국은 요리법을 재구성했고, 심지어 불면증과 건강 악화를 호소하던 뉴스 앵커 박현우조차 그 리듬에 자신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예고 없이 태양이 멈췄다.
화면에는 다시 ‘속보’라는 빨간 자막이 떴다.
“태양이 정지했습니다. 한 자리에 고정되었습니다.”
모두가 꿈꿨던 평온. 그러나 사람들은 곧 알게 되었다.
익숙함은 축복이 아니라 의존이었단 사실을.
요리는 다시 불을 필요로 했고, 라힘은 하루 세 번 하던 수확이 멈추자 가족 부양이 막막해졌다. 태양 운동에 맞춰 관절 체조를 하던 노인들은 "몸이 굳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예측 가능함은 오히려 불편했다.
그리고 또다시 어느 날, 태양은 열 개로 쪼개졌다.
분열한 태양들이 하늘을 점령하며 밤은 사라졌다. 그림자는 열 방향으로 생겼고,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잃은 채 멀티-선글라스를 착용했다.
태양은 이제 규칙 없이, 합쳐지고 쪼개지고를 반복했다. 하루 수십 차례.
태양계는 거대한 디스코볼이 되었다.
“태양 춤 지수, 오늘은 8.5입니다. 분열과 합체는 20회 예상됩니다.”
박현우는 이제 일기예보처럼 이 수치를 전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다시 떠올랐다.
‘플래시 비리야니’, ‘점프 카레’, ‘태양 탄두리’는 세계 요리 트렌드가 되었고, 사람들은 불 없이 익는 레시피에 열광했다. 태양이 쪼개질 때마다 사람들은 손을 구르고, 합쳐질 때마다 손뼉을 쳤다.
**‘태양 춤’**은 전 세계인의 의식이자, 생존의 리듬이 되었다.
거리에서 아니타는 딸 하은에게 비리야니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할머니 땐 두 시간이 걸렸어. 지금은 태양이 세 번만 깜빡이면 끝이야.”
하은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엄마, 태양이 안 춤췄을 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어?”
“글쎄… 아마, 무척 지루했겠지. 불을 피우고 기다리고… 그랬대.”
“그런 세상, 상상도 안 돼.”
하은은 비리야니를 한 숟갈 크게 떠먹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열 개의 태양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