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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Nov 01. 2023

일탈, 그리고 다시 일상

사는 이야기

일탈하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것만이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소파에 옹크린 몸위로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언제나 주말이 오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눈을 감으면 사람들의 얼굴이 회전목마가 돌듯 눈앞을 혼란시켰다. 눈을 떠 핸드폰을 보니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은 깼으나 머릿속은 혼탁했다. 그동안 기분 나쁜 두통 때문에 고생했다. 주말만 되면 그동안 견뎌왔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몰려와 속이 울렁거렸다. 현실이 싫어서 벗어나려 했고, 결국 주말이라도 다른 세상에 들어가려 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해가 떨어지려 할 때쯤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몸을 옮겼다.


시간은 저녁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버스에는 피로에 젖은 사람들이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도착을 알리는 안내멘트에 나는 쏟아지는 잠을 깨려 고개를 흔들었다. 창밖에 주황색 건물이 눈에 띄었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데도 이곳은 대낮처럼 환했다. 마치 하늘에서 이곳에만 라이트를 비췬 거 같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나는 건물의 한쪽 구석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물밀듯이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각자 자신의 몸덩이만 한 짐을 하나씩 어깨에 들쳐 매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움직이고 있다. 그들 사이 식판을 머리에 몇 개씩 쌓아둔 아주머니가  묘기하듯 사람들 사이를 뱀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나와 똑같이 눈, 코, 입을 가졌고 나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고, 얼굴에 표정이 있고, 움직임은 역동적이었다.

나는 외딴섬에 와있는 거 같았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낯선 나라에 나 홀로 길을 잃고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빵 하는 소리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로 넘어갈 듯 물건을 실은 오토바이기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핸드폰을 들고 약속장소를 확인했다.


'디오트 광장 앞 11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어 최대한 벽에 붙어 광장 앞까지 걸어갔다. 광장에는 전국 각지로 가는 물건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중국이나 홍콩, 일본 등으로 가는 해외배송물건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네댓 명의 사람들의 여기저기 모여있고, 여러 나라의 언어들이 섞어 귀에 들어왔다. 어느 말이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중국어 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가슴을 펴고 한껏 숨을 들이켜마셨다. 낯선 공기가 깊숙이 들어왔다. 또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메모해 둔 종이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 보기로 한 조규호라고 합니다. "


아!라는 짤막한 소리와 동시에 전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여기요'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건물 입구에 가방을 대각선으로 멘 작고 마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마치 피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입술도 창백해서 그가 입을 벌리지 않았다면 구분할 수 없었을 거다. 잘못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창백한 손으로 내게 악수를 건넸다. 손을 잡는 순간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압력에 놀라 손을 바로 뽑아내었다. 한 겨울인데도 반팔에 소매가 없는 누비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솜이 들어가 있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얇아 보였다. 낡은 바지는 여기저기 찢어져있었고 그 사이로 무릎이 튀어나와 있었다. 생긴 거와 다르게 굵은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 나이가  있으신데 할 수 있겠어요?"

" 네 문제없습니다. "

" 당분간 일당으로 쳐줄게요. 오 팀장이라고 부르세요. 전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나의 목적은 퇴사였다.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면, 벗어날 수 있다면, 새로운 삶을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팔자 좋은 소리 한다고 할 지도 모른다.

매달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는데 뭐가 걱정이냐, 무슨 위라벨을 따지느냐,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있다 등이 내가 들어온 말이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벗어나길 원하는 것일까, 나는 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안정된 소득이 있다면 '만사 오케이'라는 말인가?. 나는 아직 철이 안 든 것인가? 누군가가 그 기준을 정해주었으면 했다. 아니 한 번이라도 일탈해보고 싶었다.


얼마 전 방송에서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배달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일명 '사입삼촌'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사입삼촌이 하는 일은 도매와 소매를 연결해 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소매업자들이 매일 같이 밤을 새 가며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육체적으로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사입삼촌은 이를 대신해 물건을 구매해 주고 각자의 소매매장에 배달까지 해준다. 또 잘 나가는 매장의 상품을 추천까지 해주니 도매업자, 소매업자, 그리고 사입삼촌들까지 서로 윈윈하게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일이 하고 싶었다. 다른 세상에 들어가 다른 이들을 만나고,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따라오세요"


나는 오 팀장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세계에 들어온 거 같았다. 끝없이 뻗어있는 골목길이 보였고 길을 지날 때마다 또 새로운 골목길이 나오고  그 길에 또 끝없이 펼쳐졌다. 미로 속에 빠진 거 같았다.

오 팀장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귀마개를 하고 있다가  벗어던졌을 때, 주변의 모든 소음, 아니 우주의 모든 소음까지 '쾅' 하고 한꺼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넓은 공간과 높은 천장을 소리가 부딪혀 웅웅대는 소음이 청각을 둔화시켰다.


나는 물밀듯이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에 어깨를 부딪히며 중심을 못 잡고 흔들거렸다. 내가 헤매는 사이 오 팀장은 눈앞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좁은 길에는  물건들이 쌓여있어 더 좁아졌고, 골목에 서있는 사람들로 지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벌집같이 빽빽이 줄지어 들어가 있는 매장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담은 온갖 종류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다. 누구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고, 누구는 손님과 실랑이를 하고 있고, 누구는 멍하니 사람들을 보고 있고, 누구는 밥을 먹고 있고, 누구는 옷을 보라며 말을 걸었다. 나는 밀려오는 먼지와 소음으로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오 팀장이 멈추어 서서 말했다.


" 형님 여기 오다지를 줄 테니 가서 물건 받아오시면 돼요"


작은 메모장에 주문 들어온 매장 주소와 매장명, 받아야 하는 물건 이름과 개수가 적혀있었다.

'2C-6, WHO, 부대 나이스, 꽃무늬 원피스'이라고 적혀있는데 풀이하자면 2층 C라인의 6호에 있는 WHO라는 매장에 가서 부산대 나이스라는 고객이 주문한 꽃무늬 원피스를 받아오면 되는 것이다.

나는 종이에 적힌 주소로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1층과 달리 2층은 좀 더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2층 역시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입삼촌들과 소매업자들이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매장 앞에 가자 이제 막 20살을 넘겼을듯한 매장직원이 말했다.


"삼촌 어디?"

대뜸 반말이었다.

"어디냐고 삼촌!"


아! 내가 삼촌이었나? 어색한 호칭에 반말을 당연하듯 받아들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 부대 나이스"

"여기! 대봉 가져가"


끝이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매장직원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었다.


옷은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꾹꾹 눌려 담겨있었다. 이것을 대(大) 봉이라 했다. 봉지 겉면에 '부대 나이스'라고 적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손으로 들어 올리려 했다.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 손으로 들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어깨에 매기로 했다. 대봉에 담긴 옷을 어깨에 들춰 매니 몸이 휘청거렸다.

내 뒤로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고 왜소한 사입삼촌들이 대봉을 어깨에 들쳐 매고 손쌀같이 지나간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3층이었다. 요령이 없던 나는 4층부터 내려와야 하는데 거꾸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깨에 올려둔 물건무게에 몸은 한쪽으로 계속 기울어지고 있었고 머리는 한쪽으로 꺾여있었다. 나는 그 상태로 계단을 타고 3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오다지에 적혀있는 매장에 찾아가 물건을 받았다. 역시 대봉에 담긴 물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프로 가방처럼 어깨끈을 만들어 오른쪽 어깨에 메고 다른 한 덩어리는 왼쪽 어깨 위에 올렸다.  그리고 또 다른 매장에 가서 중간크기쯤 되는 물건을 받아 손으로 들었다. 총 3개의 물건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따라 한발 한발 간신히 옮겨 1층으로 걸어내려 갔다. 감당할 수 없는 무개에 숨이 턱까지 올라왔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졌었다.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오는 순간 발을 헛디뎠다. 나는 앞으로 쏟아지는 무개에 밀려 결국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눈앞이 번쩍거리고 암흑이 찾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봉은 옆구리가 터져 안에 있는 옷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 내 머리 위로 넘어 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나타난 오팀장이 짜증 섞인 투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형님 돌대가리세요? 그걸 미련하게 한 번에 들고 내려오게"


가장 바쁜 시간에 오팀장과 나는 쏟아진 옷들을 다시 정리했다. 오팀장의 핏기 없던 얼굴은 벌겠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 할당 마치면 이따 광장으로 오세요"


오팀장은 이 말만 하고 어디론가 황급히 사라졌다.

어디가 다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온몸이 뻐근했다. 나는 남은 할당을 마치고 광장으로 나갔다.


몸이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밤낮을 바꿔가면 일하는 사람들,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옮겨가는 걸음들, 오랜만에 보는 활기 넘치는 광경들이 새로웠다.

시간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이곳은 하루를 끝내려고 하고 있었다. 광장을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건물에 내리는 햇빛에 광장은 그림자가 드리워 어두워졌다.


저녁때보다 더 창백해진 오팀장이 다가와 말해다.


"형님, 오늘까지만 하시고요. 그냥 다니던 회사 출근하세요"


오팀장은 칠만 원이든 봉투를 건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득 '일상'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보았다.


일상 (日常) :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그래 나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리 힘들지 모르겠다.

집에 가는 길에 길가에 보이는 식당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있었고 그렇게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활짝 웃고 있었다. 난 그것이 부러웠다.


유난히 긴 하루를 보냈다. 밤새도록 일어난 일들은 꿈을 꾼 것 같이 기억이 가물거린다.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일탈이었을까.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풋풋한 샴푸냄새와 향수냄새가 진동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찌든 땀 냄새를 풍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아내와 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활짝 웃어주었고, 보리가 달려와 다리에 몸을 비빈다. 누가 봐도 행복한 가족이 여기에 있었다. 이것이 앞으로 내가 찾아가야 할 일상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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