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을 작은 카페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느끼지 못한 강렬한 끌림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커피 향이 코 끝에 느껴졌다. 그 향을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카페주인으로 보이는 키 작은 남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자는 시끄러운 기계 소리 때문에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손바닥만 한 나무에 동물을 그린 그림이 여러 장 붙어있었다. 나는 그림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소, 말, 강아지, 고양이, 여우, 호랑이, 토끼 그림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어딘가를 보고 웃고 있었다.
동물이 웃고 있는 것이 신기해 남자에게 물었다.
“동물 그림이 모두 웃고 있네요?”
커피를 내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그는 소음 때문에 듣지 못하는 거 같았다. 나는 다시 거리를 띄운 채로 남자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좀더 지켜봤다. 남자는 커피머신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나도 저렇게 뭔가를 아무 생각 없이 능숙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번아웃이 온 듯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했다. 나는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멍하니 하루가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늘 슬픔을 생각하는 삶, 추상적이 슬픔이 아닌 구체적 슬픔에 매몰된 삶. 의사는 ‘다들 그렇게 살아요’ 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다들 그럴까?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의심을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오히려 위안을 삼았다. 나도, 그들도 어쩌면 저 남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마침내 남자의 커피머신이 조용해졌다. 나는 남자에게 다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남자는 깜짝 놀라며 인사를 했다. 나는 웃고 있는 동물에 대해 물었다.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동물은 원래 항상 웃고 있잖아요.”
남자의 말에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동물이 웃고 있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 박혀 있는 동물의 얼굴은 무표정한 얼굴, 화가 난 얼굴이었다. 웃고 있는 얼굴은 본 기억이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동물이 늘 저렇게 웃고 있나요? 왜 전 몰랐을까요? 신기하네요.”
남자는 말했다.
“동물 키우세요? 그럼 집에 있는 동물의 얼굴을 생각해 보세요. 그럼 생각나실 거예요.”
나는 집에 있는 고양이 보리를 떠올려봤다. 보리가 나를 볼 때 어떤 얼굴이었던가? 나는 보리를 보고 웃는다. 내가 유일하게 웃는 때일지도 모른다. 그럼 보리는 나를 보고 웃었던가? 나는 다시 그림 속의 동물을 보았다. 보리의 표정과 같았다. 그렇다. 보리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리를 보고 웃었듯이 보리도 나를 보고 웃어 주었던 것이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평소와 같으면 커피를 들고 카페를 나갔겠지만 그날은 왠지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림이 걸린 벽면 반대편에 앉아 다시 그림을 보았다. 정면에서 보니 동물들은 나를 보고 웃고 있는 듯했다. 환한 미소가 따듯한 커피와 함께 기분을 풀어주었다.
나는 남자에게 웃는 동물을 그린 이유를 물었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떼었다.
동물의 얼굴은 남자에게 자신을 감정을 반영하는 표상이라고 했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귀찮은 존재,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만 실은 무책임하게 버릴 수도 있는 존재,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은 이토록 복합적인데 동물들이 보여주는 얼굴은 언제나 같았다는 것이다. 남자는 그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이거나, 기분 나쁜 얼굴이거나, 아니면 마스크를 쓴 얼굴로 들어온다. 그들의 감정은 다양하다. 그런데 그들에게 남자는 마치 동물처럼 자신의 웃는 얼굴만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웃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동물의 얼굴을 그렸다고 했다.
나는 나의 얼굴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나를 보고 웃지 않느냐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난다. 그래서 더 어깃장을 놓듯 비아냥거리게 된다. 왜냐하면 웃음이란 상대적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상대에게 웃어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바닥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동물 그림이 걸린 카페에서 나는 허를 찔리고 말았다. 상대방의 다양한 감정에 상관없이 웃어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보리와 같이, 그림 속의 웃는 동물들과 같이 나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지어 준다면 그들도 내게 웃어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웃으며 생각했다. ‘내가 먼저 웃어주면 그들도 웃어줄 거야’ 라고 말이다.
방금 나온 커피를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으니 커피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내려놓고 눈을 떴다. 다시 눈을 떠도 커피는 보이지 않고 커피 향만이 남아 흐르고 있었다. 나는 커피 향을 코로 들이마셨다. 아주 적은 힘으로 살짝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내 안으로 깊숙히 들어온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피 향은 무뎌지고 사라지겠지만 완전히 소멸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영원할 수도 있고, 어쩌면 너무도 쉽게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의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카페를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문앞에서 아내와 보리가 웃고 있었다.
아직도 내 안에서 진한 커피향이 출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