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교 Dec 07. 2023

나무의 꿈

어른 동화


 이름 모를 산이 있었다. 그 산은 동해가 보이는 해안가에 있었다.  산 중턱에는 자그마한 공터가 있었다. 공터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해가 뜨거나 질 때면 붉은 노을이 산 전체를 붉게 물들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흰 거품처럼 솟아오르는 파도소리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때렸다.

      

 그 공터는 비어있지만, 외롭지 않았다. 다람쥐도 왔다 가고, 노루와 여우도 왔다 가고, 작은 새들도 날아들곤 했다. 자ᆞ각은 동물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공터 곳곳에 땅을 파 작은 씨앗을 숨겨두었다. 그래 놓고는 씨앗을 숨겨둔 장소를 잊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잊혀진 씨앗들은 땅속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새싹이 올라왔다. 새싹들은 비를 맞으며 뿌리를 만들었고, 흙속의 영양분을 받아 줄기를 만들었으며, 태양의 빛을 받아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속 자라나 작은 나무들이 되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공터는 나무들로 무성해졌다. 작은 나무들은 제법 튼튼한 어른 나무가 되었고 곧 열매를 맺었다. 열매가 익자마자 새들이 찾아와 따먹었고, 떨어진 열매는 작은 동물들은 주워 먹었다. 나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났다. 그들은 숲을 이루게 되었고 이제 공터는 더 이상 공터가 아니었다.  


 공터의 숲에는 여러 나무들이 어울려 살고 있었다. 그중에는 큰 나무들에 가려 제대로 자라지 못한 작은 나무가 있었다. 큰 나무들은 태양의 빛을 가렸고, 그 힘센 뿌리를 뻗쳐 땅속의 영양분도 다 빼앗아갔다. 큰나무들이 작은 나무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작은 나무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큰나무들 눈에는 큰나무들만 보였다. 그 아래에서 작은 나무는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었다.

 빛을 쬐지 못 해, 키가 크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해도 작은 나무는 울지 않았다.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으면서도 슬퍼하지 않았다. 작은 나무가 눈물을 흘리는 건, 오직 한 가지 이유.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작은 나무는 상상하곤 했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와 그 안의 무수한 생명들... 오래도록 꿈꾸고 상상한 것을 결코 눈으로 확인하지 못 할 거라는 사실에 작은 나무는 슬픔에 잠기곤 했다.




 어느 날 작은 새들이 날아와 말했다.


 “위험해 그들이 오고 있어!”


 그들이라니 누구일까? 작은 나무는 궁금했다. 그러나 큰나무들은 새들의 경고 따위 가소로운 듯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낯선 동물들이 재잘대며 떼지어 숲으로 몰려들어왔다. 그들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두 발로 걷고 있었고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든 그 물건으로 키 큰 나무들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무들은 서로를 붙잡으며 버텼다. 그중 가장 큰 나무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허리가 부러지며 넘어졌다. 차례대로 다른 나무들이 뽑히거나 쓰러졌다. 쓰러진 나무들은 동강 나고, 가지가 부러지고 잘렸다. 이파리와 잔 가지들은 사방으로 날렸고, 땅에 떨어진 열매는 사람들이 먹어치웠다. 새들은 그들을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나무들도 사람들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사람들은 나무에 깔려 죽고,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들고 온 도끼에 발등이 찍히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란 듯이 나무를 조각내고 갈기갈기 찢어냈다.  순식간에 나무들은 모두 쓰러졌고, 수십 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공터는 예전의 공터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쓰러진 나무를 수례 바퀴에 싣고 사라졌다.     


 그 날 작은 나무는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인 줄 알았었다. 무성한 잎을 피워보지도 못 하고 열매도 한 번 맺어보지 못 한 채 이대로 잘려 나가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작은 나무를 탐내지 않았다.  그는 홀로 서 있게 되었다. 큰 나무들은 모두 뿌리뽑혀 어디론가 실려갔다. 그는 공터를 독차지했다. 그러나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토록 보고 싶던 바다를 내려다보았지만, 바다는 그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쏟아지는 햇빛은 달콤하고 풍요로웠지만, 그는 더 이상 자라나고 싶지 않았다. 뿌리에 스며드는 진한 양분도 그에게는 아무런 맛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혼자였기 때문이다. 숲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대로 죽은 듯이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자연은 절망한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홀로 싸워야 했다. 태풍이 불고,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작은 나무는 쓰러질 듯 휘청거렸지만 버텨내야 했다. 작은 나무는 결심했다.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남기로 말이다. 비록 열매를 가져보지 못하더라고, 무성한 잎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뿌리를 단단히 내려 영원히 바다를 바라보며 살기로 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다시 여름이 오고 가을이 또 다시 겨울이 지나갔다.     

 

 그렇게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태풍과 폭설과 가뭄과 혹한은 계속되었다. 작은 나무의 뿌리는 점점 튼튼해졌고 땅속 깊숙이 펴져나갔다. 허리는 굵어졌으며 키는 하늘로 높게 올라갔다. 가지들은 사방으로 뻗쳐나갔고, 무성한 잎을 피웠다. 작은 나무는 더 이상 작은 나무가 아니었다. 나무는 드디어 열매도 맺었다. 작은 새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떨어진 열매를 먹으러 작은 동물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작은 나무는 어느덧 당당한 한 그루의 어른 나무로 성장해 있었다.

 어느 날 작은 새들이 재잘거리며 말했다.


“큰일 났다. 그들이 몰려오고 있어”     


 나무는 두려웠다. 숲을 말살시킨 사람들이 다시 오고 있다. 나무는 생각했다. 이제야 무성한 잎을 피우고 열매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태양의 달콤함을 맛을 알고,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나무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만약 나무를 베어내면 다시 움틀 것이라 각오했다.

 잠시 뒤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지난 번처럼 나무를 해치지 않았다. 그들은 수레에 뭔가를 싣고 왔다. 반듯하게 자르고 매끄럽게 깎은 나무들이었다. 나무들에게 말을 걸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나무들은 죽어있었다.


 그들은 죽음을 몰고 오는 존재 같았다.      

 사람들은 바다가 보이는 공터에 죽은 나무를 던져놓았다. 그리고 죽은 나무들을 이리저리 끼우더니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정자라고 불렀다. 그들은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만들러 온 것이었다. 새로운 탄생이었다. 그것은 죽음과 달랐다. 나무는 과거를 기억했다. 이제는 정자의 기둥과 대들보가 된 큰나무들이 숲의 가족으로 살던 시절을...


 그들은 한때 이곳에 살아있는 나무였고, 숲을 이루는 존재였다. 이제는 새로운 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났다. 나무는 생각했다. 죽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던가?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했었던가? 그러면 살아남기 위해  왜 그리 처철하게 발버둥쳤던가?  존재의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정자라고 불리는 곳에서 비바람과, 눈을 피하기고 하고,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달이 뜬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그래도 나무는 외로웠다. 나무는 정자에게 열심히 말을 걸었다. 나 기억나? 정자는 대답이 없었다. 나무는 포기하지 않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나 작은 나무야. 지금은 이렇게 큰나무가 되었지만 너희기 이곳에 살때 작은나무였어. 모르겠어?"


정자는 계속 말이 없었다. 정자는 죽은 나무였다. 작은 나무는 죽은 나무곁에서 홀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건 너무 슬프고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나무는 스스로 뿌리를 뽑아서 바다로 달려가 몸을 던졌다.


 나무는 꿈을 꾸었다.

 더 이상 바다를 바라보며 영원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지 않아도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잊지 말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