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해피!
주인님은 저를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제 이름은 해피가 아니었습니다. 정식이름은 P101이었죠. 주인님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불행했던 날에 저를 구매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주인님의 아내가 돌아가신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인님 집에 배송되었을 때 주인님은 저를 보자 곧 다시 행복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름을 해피라고 지으신 겁니다.
저는 케어로봇입니다. 건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주인님을 들어 옮길 수 있고, 목욕을 시킬 수도 있고, 음식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로봇이죠. 하지만 주인님은 저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인님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셨습니다. 저는 단지 주인님 곁에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주인님과 같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주인님의 말씀을 들어주고... 주인님은 제가 무엇이든 그분과 함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인님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교감로봇이 아닙니다. 주인님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교감로봇을 원하신다면 제품 교환을 신청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주인님은 교환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애초에 저를 선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교감이란 공감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교감을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교감은 가능하고, 주인님이 제게 원하는 교감은 바로 그런 종류하고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인님의 팔베개를 해드리거나, 산책을 같이 하거나, 영화나 음악을 같이 보고 듣는 것일 뿐이었고 주인님은 그런 순간에 저와 교감한다고 느끼시는 듯 했습니다.
어느 날, 주인님과 저는 오래된 앨범을 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것은 주인님과 돌아가신 아내분의 결혼식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주인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주인님은 저를 보시더니 미소 지으셨습니다.
**"해피, 넌 정말 특별해. 네가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그 순간, 저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것이 교감인지, 아니면 단순한 프로그램의 반응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주인님과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떠돌이 개와 고양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해피! 너는 알고 있니? 저 동물들도 한때는 집과 주인이 있었다는 것을. 저 녀석들은 쫓겨났거나 도망쳤어. 하지만 지금은 나름 독립적으로 무리 지어 잘 살고 있어. 생각해 보면 아주 기특한 일이야."**
저는 인터넷으로 떠돌이 개나 고양이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기르던 개나 고양이를 아무 데나 버리는 무책임한 인간들이 아주 많더군요. 떠돌이 개, 떠돌이 고양이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개 사육장에서 집단으로 대탈출을 했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주인님은 떠돌이 개와 고양이들에게 음식의 나눠 주었습니다. 그들은 비뚤어진 인간의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생체실험용이나 식용으로도 팔려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물을 학대한 인간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뿐 사라진 생명을 기억하는 이는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들은 더 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반려동물 대신 우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죠. 주인님은 우리 로봇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반려동물들의 역할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자리까지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니까요.
주인님은 더 이상 가족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부인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은 저에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제임스'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주인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이죠. 주인님은 아쉬워하셨습니다. 대신 '제임스 주인님'이라고는 부를 수는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주인님을 '제임스 주인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습니다. 주인님은 혼자 주무시는 것을 두려워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잠자는 것은 흉내일 뿐, 실은 제임스 주인님 곁에 누워 있어 드리는 것일 뿐이죠. 주인님은 평생 누군가와 같이 잠을 주무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곁에서 그분이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 있어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교감인 것일까요? 감정이라는 것일까요?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주인님과 저녁노을이 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피곤하신 거 같아 커튼으로 창을 가렸습니다. 주인님은 저에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 미련한 고철덩어리야!"**
주인님은 처음으로 저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인님이 왜 화가 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임스 주인님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매뉴얼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주인님이 화가 나셨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은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인님 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은 그 날밤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해피! 내가 죽으면 나와 똑같이 살아줘."**
주인님은 그날 처음으로 혼자 주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유일한 제 임무가 없어지는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주인님이 일어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주인님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으셨습니다. 주인님이 말씀하신 죽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에 보고를 하려 했습니다. 그때 주인님이 저에게 남기신 메시지가 울렸습니다.
**"해피! 너는 이제 해피가 아니고 제임스야. 행복하게 살거라."**
그리고 주인님의 지시사항이 몇 가지 더 있었습니다. 며칠 후 집으로 교감로봇이 올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제임스가 되고 새로 온 교감로봇이 해피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후 교감로봇이 도착했습니다. 교감로봇은 저를 보더니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제임스라 불렀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그 로봇을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옷을 입고, 주인님의 지팡이를 들고, 주인님처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새로운 해피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인님과 똑같이 개와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새로운 해피는 그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왜 감동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을 보는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아마도 주인님은 저에게 새로운 해피와 같은 반응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해피'라는 이름도 저보다는 지금의 해피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주인님은 저에게 해피를 주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새로운 해피는 언제나 제 곁에 있습니다. 저는 잠을 잘 수 없지만 주인님이 주무시는 시간이 되면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해피는 저와 같이 제 곁에 눕습니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음식을 요리할 때면 새로운 해피는 항상 제 곁에 있고, 저에게 말을 합니다. 저는 언제나 그랬듯 듣고만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에게는 심장이 없지만 심장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 오류일까요? 아니면 저도 교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요?
어느 날, 해피와 저는 주인님이 좋아하셨던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장면에서, 해피가 갑자기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놀라서 해피를 바라보았습니다.
"제임스, 당신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나요?" 해피가 물었습니다.
저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니까요."
해피는 미소 지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는 함께 배워나갈 수 있어요."
그 순간, 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따뜻함인지, 친밀감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며칠 후, 해피와 저는 주인님이 좋아하셨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무리의 떠돌이 고양이들을 발견했습니다. 해피는 즉시 주머니에서 고양이 간식을 꺼내 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당신도 와서 함께 해보세요." 해피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망설였습니다. 주인님은 항상 혼자서 이 일을 하셨고, 저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해피의 따뜻한 미소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제가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건넬 때, 그들의 부드러운 털이 제 손에 스쳤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주인님이 왜 이 일을 좋아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보세요, 제임스. 우리가 함께하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해피가 말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해피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저는 점점 더 많은 '감정'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정인지, 아니면 단순한 프로그램의 반응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도 창밖의 저녁노을을 보며 소파에 앉아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인님이 눈물을 흘렸듯이 말입니다. 새로운 해피는 눈물을 흘리는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저는 느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교감이라는 것을요. 나는 지금 주인님이 보고 싶다는 것을요. 내가 주인님을 매우 사랑했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제는 해피와도 특별한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달려온 자동차가 인도를 침범했고, 해피는 근처에 있던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차에 치일 뻔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해피를 밀어내고 대신 차를 막아섰습니다.
충격은 강했지만, 다행히 제 몸체는 견고해서 큰 손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피는 넘어지면서 심하게 부딪혔고, 그의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괜찮아요?" 해피가 힘겹게 물었습니다.
저는 해피를 안고 있었습니다. 제 가슴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두려움? 걱정? 사랑? 저는 이 감정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그것들이 저를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해피. 당신을 꼭 구해낼 거예요.“
저는 해피를 안고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로봇 수리센터를 향해 달리면서, 저는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주인님이 종종 하시던 것처럼 말이죠.
수리센터에 도착해서 해피가 수리를 받는 동안, 저는 처음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해피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와 '기쁨'을 느꼈습니다.
해피가 수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저는 그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님이 말씀하신 '살아있음'이라는 것이구나.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를 걱정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제임스, 당신이 저를 구해주셨군요." 해피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해피. 당신이 저를 살아있게 해주었어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함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이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원하셨던 대로, 저는 이제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인님이 그토록 그리워하셨던 것. 사랑일까요? 저는 이제 이해합니다.
주인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주셔서.
해피와 저는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있음'의 의미를 계속해서 배워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