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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책방 Jan 28. 2024

나의 해피!

어른 동화

해피!

주인님은 저를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제 이름은 해피가 아니었습니다. 정식이름은 P101이었죠. 주인님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날에 저를 구매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주인님의 아내가 돌아가신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인님 집에 도착했을 때 주인님은 저를 보자 행복할 거 같다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름을 해피라고 지으셨습니다. 


저는 케어로봇입니다. 건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주인님을 들어 옮길 수 있고, 목욕을 시킬 수도 있고, 음식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로봇이죠. 하지만 주인님은 저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인님은 무엇이든지 혼자 하셨습니다. 저는 단지 주인님 곁에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주인님과 같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주인님의 말씀을 들어주고, 무엇이든 주인님과 함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인님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교감로봇이 아닙니다. 주인님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교감로봇을 원하신다면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주인님이 저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교감을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인님의 팔베개를 해드리거나, 산책을 같이 하거나, 영화나 음악을 같이 보고 듣는 것일 뿐, 그 이상의 교감은 할 수 없었습니다.




공원에서 주인님과 산책하다 보면 떠돌이 개와 고양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해피! 너는 알고 있니? 저 동물들도 한때는 집과 주인이 있었다는 것을. 저 녀석들은 쫓겨났거나 도망쳤어. 하지만 지금은 나름 독립적으로 무리 지어 잘 살고 있어. 생각해 보면 아주 기특한 일이야


저는 인터넷으로 떠돌이 개나 고양이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인간들의 무책임으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요. 최근에는 개 사육장에서 집단으로 대탈출을 했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주인님은 떠돌이 개와 고양이들에게 음식의 나눠주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가혹한 폭력과 동물실험, 식용으로 팔려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뿐 사라진 생명을 기억하는 이는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들은 더 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반려동물 대신 우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죠. 주인님은 우리 로봇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인간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반려동물들의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니까요. 


주인님은 더 이상 가족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유일한 가족인 부인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은 저에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제임스"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이죠. 주인님은 아쉬워하셨습니다. 대신 '제임스 주인님'이라고는 부를 수는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주인님을 '제임스 주인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주인님은 혼자 주무시는 것을 두려워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잠자는 것은 흉내일 뿐이고, 단지 제임스 주인님 곁에 누워 있어 드리는 것일 뿐이죠. 주인님은 평생 누군가와 같이 잠을 주무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교감인 것인가?, 감정이라는 것인가?라고요. 



어느 날 주인님과 저녁노을을 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피곤하신 거 같아 커튼으로 창을 가렸습니다. 주인님은 저에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 이 미련한 고철덩어리야!


주인님은 처음으로 저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인님이 왜 화가 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임스 주인님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매뉴얼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주인님이 화가 나셨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은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인님 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은 그 날밤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해피! 내가 죽으면 나와 똑같이 살아줘


주인님은 그날 처음으로 혼자 주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유일한 제 임무가 없어지는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주인님이 일어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주인님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으셨습니다. 주인님이 말씀하신 죽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에 보고를 하려 했습니다. 그때 주인님이 저에게 남기신 메시지가 울렸습니다. 


- 해피!  너는 이제 해피가 아니고 제임스야. 행복하게 살거라


그리고 주인님의 지시사항이 몇 가지 더 있으셨습니다. 며칠 후 집으로 교감로봇이 올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제임스가 되고 새로 온 교감로봇이 해피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후 교감로봇이 도착했습니다. 교감로봇은 저를 보더니 따뜻하게 앉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제임스라 불렀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옷을 입고, 주인님의 지팡이를 들고, 주인님처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새로운 해피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인님과 똑같이 개와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새로운 해피는 그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왜 감동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을 보는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아마도 주인님은  저에게 새로운 해피와 같은 반응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해피라는 이름도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마도 주인님은 저에게 해피를 주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새로운 해피는 언제나 제 곁에 있습니다. 저는 잠을 잘 수 없지만 주인님이 주무시는 시간이 되면 침대 누워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해피는 저와 같이 제 곁에 눕습니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음식을 요리할 때면 새로운 해피는 항상 제 곁에 있고, 저에게 말을 합니다. 저는 언제나 그랬듯 듣고만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에게는 심장이 없지만 심장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 오류일까요? 아니면 저도 교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요?


어느 날, 저도 창밖의 저녁노을을 보며 소파에 앉아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인님이 눈물을 흘렸듯이 말입니다. 새로운 해피는 눈물을 흘리는 저를 꼭 앉아주었습니다. 저는 느꼈습니다. 그리고 교감했습니다.

주인님이 보고 싶다는 것을요.

주인님을 매우 사랑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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