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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Feb 12. 2024

우리는 왜 그럴까?

짧은 글

연구실 창밖에 보이는 도시는 도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져있다. 거대한 물류의 흐름이 보이고 사람들은 거기에 기생하듯 흘러가고 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몰려든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도 전에, 희망을 채우기도 전에,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거미줄에 지쳐가고 헤매게 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결국 거대한 거미에 잡아먹히게 된다. 퇴근시간이 넘었지만 형식적이나마 일을 한다는 연기를 위해 회사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창밖을 보며 사색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해방이다. 


저녁 9시, 난 조용히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이 시간에 나를 붙잡는 사람은 없겠지만 왠지 모를 미련이 남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커피자판기에서 믹스커피 한잔을 뽑았다. 진한 단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신 씨였다. 


- 어이구, 커피 마시는 팔자가 보기 좋네요. 부럽습니다. 


말에 가시가 있었다. 

-네..

-나도 한잔 마십시다.


나는 자판기 버튼을 누르고 신 씨를 쳐다보았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있었고 작업복은 땀에 절어 얼룩져있었다. 


-무슨 띠요?

-네?

-호랑이띠, 말띠, 그런 거 있잖아요

-토끼띠인데요.

-허허 고생 좀 하겠구려. 여기는 우리 같은 토끼띠가 버텨내기 힘든 곳이지.


신 씨는 나보다 12살 많은 띠 동갑이었다. 모두들 MBTI를 물어볼 때 신 씨는 언제나 띠를 물어보고 다녔다. 신 씨는 회사사람들의 띠를 대부분 알고 있다고 했다. 누구와 누구는 띠가 맞아 좋고, 누구와 누구는 서로 앙숙일 거고, 그래서 누구와 가까이 지내야 하고, 또 거리를 두어야 하는 지를 떠들어댔다.

신 씨 말에 따르면 토끼띠는 이들 사이에서 기를 못 펴고 미움을 받을 거라고 했다. 엉뚱하지만 대충 맞아떨어지는 풀이에 웃었다. 


-소장님 힘들죠?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빛이 미묘하게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신 씨는 그 유명한 '신천지' 신도였다. 보통 주변사람들에게 숨기기 마련인데, 신 씨는 당당히 자신의 종교를 밝히고 다녔다. 심지어 회사 사람들에게 전도하려했다. 결국 회사에 알려져 한 번 더 종교문제로 소란스럽게 하면 퇴사처리 하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신 씨가 말하는 이론은 항상 이랬다. 


'포용하라!'


맞는 말이지만 신 씨가 말하는 포용해야 하는 주체는 약자였다. 보통 강자가 약자를 포용하라고 말하지만, 신 씨는 약자가 강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사람들에게 고민상담을 해준다며 이런 식의 논리를 펴, 오히려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기고 했다. 

하지만 신 씨는 자신이 강자에게 부당하니 일을 당하면 분노를 참지 못했다. '포용'이라는 단어가 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거 같았다. 


신 씨는 한국인 근로자에게는 경계심을 가졌고, 베트남이나 스리랑카와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는 하대하였으며, 조선족 근로자와는 앙숙처럼 지냈다. 이유는 감히 한국사람에게 지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신 씨는 외국인 근로자와 매일 같이 싸움을 일삼았다. 신 씨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어느 날 인사과장이 신 씨를 불러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있었다. 신 씨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인사과장은 머리를 뒤로 젖혔다 앞으로 숙이기를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신 씨가 일을 갑자기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바로 당일에 그만둔다니,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갑자기 인원이 빠지면 생산에 지장이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신 씨에게 물었다. 


-어디 좋은 곳으로 가시나 봐요?

-여기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가게 됐어요.


신 씨는 동종 업계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더 높은 직급에, 더 많은 급여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신 씨에게 좋은 곳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신 씨가 부러웠다. 그렇게 신 씨는 다음날 그만두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노동부에서 현장 점검이 불시에 나왔다. 이유는 신 씨에 대한 것이었다. 신 씨가 회사를 노동부에 신고한 것이다. 신고한 이유는 회사의 불합리한 업무배정으로 적응하기 힘들었고, 그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본인이 사전 통보 없이 그만둔 것이고, 업무 배정은 능력에 따른 정당한 과정이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현장점검반이 돌아가고 나서 박대리가 연구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 씨에 대해 말해주었다. 


신 씨가 경쟁회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이력서에 허위 경력을 기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의 기술적 노하우를 많이 알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 씨는 잡일만 하던 사람이었다. 결국 거짓말이 들통난 신 씨는 입사 2달 만에 쫓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 씨는 억울하다며 그 회사 정문에서  목을 메는 자살소동을 벌였다고 했다. 그것이 통하지 않자 우리 회사까지 노동부에 신고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신 씨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신 씨가 살아가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신 씨는 자신만의 잣대로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어쩌면 신 씨가 살아가는 방법이 좋았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만이 기준이 되는 삶. 타인이 중심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중심이 되는 삶.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빌런'이라 불리는 그들만의 잣대, 그들만의 이유와 결론. 차라리 그것이 속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신 씨는 나를 부럽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린 각자의 배를 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작은 배를 타고 컴컴한 망망대해를 헤매다 결국 백 년도 못살고 바닷속으로 침몰하게 된다. 나는 생각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왜 그리 열심히 사는지, 왜 그리 많이 갖으려고 하는지, 왜 그리 서로 미워하는지 말이다.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지구의 나이의 비하면, 우리는 잠깐 스쳐가는 인연일 뿐인데. 

우리의 삶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도 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왜 그렇게, 길게 고통스러워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도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삶을 마무리하며 잠에 든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나를 보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럽기에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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