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천 년 전이었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가진 날에 바다처럼 넓고 우주처럼 광대한 파란 눈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어. 특이하게도 아이는 머리에 붉은 뿔 두개를 가지고 태어났어. 사람들은 그 뿔을 탐내었지. 그 뿔을 가진다면 세상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한 남자가 있었어. 그 남자는 짧은 은발, 흰 피부, 큰 키에 검은 망토를 두루고 있었어.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했지. 남자는 생각했어. 소년의 뿔을 가질 수만 있다면 세상은 남자의 것이 될 거라고 말이야. 남자는 아이에게 다가가 속삭였어.
- 어떠니 아이야. 나와 함께 세상을 지배해보지 않겠니?
순진한 아이는 그것이 악마의 농간인 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어. 아이는 뿔 하나를 남자에게 내어주었어. 남자는 뿔을 받아 남자의 한쪽 어깨에 달았지. 그리고 남자는 전쟁을 일으켰어. 남자는 세상을 하나씩 정복하기 시작했어. 남자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승리를 했고, 부와 명예가 남자를 따랐지. 하지만 생각처럼 세상 모두를 정복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어. 극심한 저항에 남자는 주춤했지. 남자는 생각했지. 저 아이를 꼬드겨 남은 뿔 하나를, 내 반대편 어깨에 달아야겠다고 말이야.
그 남자가 아이에게 다가갔을 때 아이의 나라는 전쟁으로 집들은 불타고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었어. 남자는 아이의 나라도 짓밟고 있었거든. 남자는 나긋이 물었어.
-아이야. 너희 나라를 살려줄 테니 나에게 남은 뿔 하나를 주지 않겠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어. 아이는 남자를 믿지 않았지.
-필요 없어.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아
남자는 입만 쩝쩝 다시고 되돌아오고 말았지. 남자는 아이를 죽이고 뿔을 빼앗고 싶었지만. 전설에 의하면 뿔의 주인의 죽으면 뿔은 효력을 잃어버린다고 했거든. 남자는 어떻게든 아이를 설득해야 했지.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 남자의 세상정복은 그만큼 늦어지게 되었지. 남자는 조급해지기 시작했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냉혹한 어른이 되었어. 쉽사리 뿔을 내어줄 거 같지 않았어. 남자는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어. 지금으로 만족해야 할까? 아니 그럴 수 없었어. 남자는 세상을 모두 가져야만 했어. 그것만이 남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
아이에겐 남은 뿔 하나가 있었고. 남자에겐 시간이 없었지. 인내가 있었지만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남자는 방법이 있었어. 남자는 아이에게 여자를 보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몰락한 왕국의 공주. 남자는 우연히 아이가 여자를 만나게 계획했어.
남자는 여자에게 말했어. 아이를 데려오면 왕국의 사람들을 살려주겠다고 말이야. 여자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달았어. 낄낄대는 악마같은 남자를 물끄러미 노려보면 말했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여자는 악마와 거래를 했어.
하지만 여자는 아이를 보자 죄책감이 들었어.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아이를 속이려했다니. 여자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아이를 꼭 살려야겠다고 말이야. 둘은 서로 사랑에 빠졌어.
여자는 아이에게 사실을 고백했어.
-무서웠어요. 모든것이 다 지옥같았어요.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을께요.
-당신의 행복. 오직 그것만을 바랄께요
아이가 여자를 만났을 때, 아이는 운명으로 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여자에게 빠져들었지. 사랑이었어.
여자는 아이와 도망치려했어. 하지만 여자는 뒤따라온 남자는 여자를 아이에게서 빼앗았어. 남자는 여자를 죽이겠다고 했어. 아이는 울부짖으며 남자를 찾아갔지.
-뿔을 줄 테니 부디 여자를..
남자는 드디어 아이의 뿔을 모두 가질 수 있었어. 남자는 양쪽 어깨에 뿔을 달았어. 남자는 완전한 힘을 가질 수 있었어. 남자는 소리쳤지.
-이제부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어
-길고 긴 이야기를
-새로운 시작을
-영원한 꿈
남자가 목소리를 내자 지옥의 연기와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어. 낄낄대는 웃음을 흘리며 녹아내리는 얼굴을 가진 악마!. 어깨에 달린 뿔에서는 불길한 빛깔에 기괴한 모양소리가 울려 나왔어. 창밖에는 폭우가 쏟아졌고, 세상을 모두 쓸어버릴 거 같았어. 아이는 남자에게 말했어.
- 여자는 살아있어?"
남자는 말했어
-살아있으면 무엇이 바뀌지?
-여자를 위협하면 네가 나타날 줄 알았지.
남자를 또 다시 아이를 배신했어. 아이는 자신을 죽이라고 했지만 남자는 아이와 영원을 함께 할 거라 했어.
남자는 자신의 드넓은 저택 다락방에 아이를 가두었어.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 외에 필요한 것은 모두 주어졌어. 아이는 생각했어. 나의 이름은 무엇이었나?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언제 죽을 것인가? 방안은 불안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
남자는 말했지. 세상을 모두 정복한 후에 아이를 죽이겠다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문이 열렸어. 방안 가득히 가라앉아있는 불안이 요동치기 시작했어. 그 불안뒤에 남자가 서 있었어. 나를 죽이겠다고 말했던 남자가.
마침내 그날이 왔다고 생각했어. 죽음은 운명처럼 다가와 나를 덮쳤어. 나는 생각했어. 죽음이 이토록 허망한 것이라면 그렇게 무서워 떨지 않았을 텐데. 검은 그림자를 가진 남자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고 나는 두 눈을 감았어. 그래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오직 저승만을 생각하자. 저승도 사람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모두가 빠쁘고 어디론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거야.
-이제 모두 끝났어요. 이제 나오셔도 돼요
그 목소리가 내 죽은 의식 속의 꿈을 깨웠어. 눈을 떴어. 다시 산사람의 세상이었어. 찬란한 빛이 두 눈에 쏟아졌어. 아이는 눈을 뜰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어.
그 여자의 목소리였어. 내 모든 것과, 생명과도 같았던 뿔과 바꾼 그녀의 목소리였어.
아이는 홀린 사람처럼 일어나 걸었어. 웅성거리는 사람 무리를 헤치고, 붙잡으려는 손을 뿌리치고 걷고 또 걸어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 멈추었어.
아이는 물었어
-제가 왜 살아있죠?
그녀는 떨리는 입술을 열어 아이를 바라보고 말했어.
-당신이 제게 삶을 주었어요.
-모든 이들에게도
사람들은 아이의 뿔을 가져간 남자를 데려와 아이 앞에 무릎을 꿀렸어. 남자의 목에는 양쪽 어깨의 달리 뿔이 스스로 자라나 목을 찌르려 하고 있었어. 남자가 조금만 목을 움직인다면 남자는 뿔에 찔려 죽고 말 거야.
남자는 아이에게 살려달라고 말했어. 아이만이 그 뿔을 거둘 수 있었지.
사람들은 소리쳤어.
-죽여! 죽여! 죽여!
아이는 손이 덜덜 떨렸어. 아니 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떨렸어. 발도, 딱딱 부딪히는 이도, 눈앞에 존재하는 세상도, 모든 것이 떨렸어.
이건 꿈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는 아이를 죽이려 하던 남자였어. 하지만 아이는 그 남자를 죽일 수는 없었어. 아이는 말했어.
-이제 이야기를 끝마칠 때야.
-길고 긴 이야기를
-짧다면 짧은 이야기를
아이가 남자에게 손을 내밀더니 남자의 목을 겨눈 뿔이 사라졌어. 뿔은 다시 아이의 머리로 돌아왔지. 뿔이 사라진 남자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 검은 연기가 남자를 감싸기 시작했고, 은발과 흰피부는 검게 변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남자는 재로 변해 하늘 위로 흩날렸어.
그때 아이의 머리 위로 새들이 날아다니며 지저기지 시작했어. 새만이 아니었어.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오듯 세상모든 것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 뱀하나가 아이의 앞에 고개를 치켜들었어. 지렁이도, 지네도, 동물들도, 사람들도, 벌도, 이름 모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입을 모아 하나로 외쳤어.
-이야기를 들려줘!
아이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시작했어. 영원한 행복을 맞이한 그녀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