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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책방 May 01. 2024

나의 소리는 죽었어요.

어른 동화

-소리가 죽으면 정적이 찾아와요


당신이 말하던 정적이라는 단어는 왠지 소름 끼치게 편안했어요. 고요했고, 평온했고. 아름다운 단어 같았어요. 당신은 신기한 듯 내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말했지요.


-두렵지 않아요?



나는 말했어요.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모두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자동차 소리, 기차 소리, 천둥소리, 부서지는 소리, 떨어지는 소리.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를 소음이라고 했어요. 듣기 싫은 시끄러운 소리가 날 때마다 모두들 얼굴을 지푸렸죠. 심지어 사람들은 소리를 억지로 막기 위해 귀마개를 하거나 이중 삼중으로 방음벽을 세웠어요. 그리고 그 소리를 덮기 위해 음악을 틀기도 하죠.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부러웠어요. 시끄러운 소리든, 아름다운 소리든...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요. 나의 소리는 죽었어요.




나는 소리가 죽은 날을 기억해요. 그날 소리는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나도 죽어가는 소리를 살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에 찾아가 보기도 하고, 소리에 좋다는 온갖 약을 먹어도 봤지요. 하지만 힘겹게 저항하던 소리는 결국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 땅바닥에 툭하고 쓰러졌어요. 한때 천둥과 같이 우렁차던 소리는 너무나도 불 품 없어 보였어요.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았지요. 그렇게 그날 나의 소리는 죽었어요.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하지만 눈물이 눈앞을 가릴 때까지 나는 내가 우는지 몰랐어요. 엉엉 우는 소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나는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귀 기울여보았어요. 그렇게 듣기 싫어하던, 제발 떨어져 나가길 바라왔던, 아니 나의 일부분 같았던 '이명'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어요. 나는 죄책감을 느꼈어요. 내가 너무 소리에게 민감하게 굴어서 소리가 떠나간 것이 아닌지, 제발 조용히 하라고 소리쳐서 소리가 실망한 것은 아닌지, 귀를 너무 막아대서 소리가 숨을 쉴 수가 없어 숨 막혀 죽은 것은 아닌지, 내가 소리에게 했던 모든 잘못이 생각났어요. 미안하다고,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미 늦었어요. 그렇게 소리는 떠났어요.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어요. 소리가 떠난 세상은 침묵만이 남았어요. 사람들은 눈빛만으로 나에게 말을 했어요. 모두가 나를 보며 입을 움직이는데, 나는 들을 수가 없어 멀뚱히 서있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눈을 동그렇게 뜨고 나를 똑바로 쳐다봤어요.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수치스러웠고 모욕적이었어요. 눈물이 흘렀어요. 눈물이 흐르는 소리마저 고요했어요. 그래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어요.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소리 없는 세상’을 검색해 보았어요. 다행히도 소리 없는 세상이 있었어요. 그곳에는 소리 없는 세상의 '사랑', 소리 없는 세상의 '울림', 소리 없는 세상의 '재회', 소리 없는 세상에 '들어가기'. 

나는 너무나 기뻤어요. 소리 없는 세상도 지금과 다른 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곳에는 소리만 없을 뿐이지 모든 것이 있었지요. 그래서 나는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하지만 이곳에 오는 길은 험난했어요. 모든 위험은 소리로 경고했어요. 소리가 없는 나는 온몸으로 위험을 맞아갔어요. 상처는 덪나고 아물고를 반복하며 굳은 살로 바뀌어갔어요. 그렇게 나는 이곳에 오게 되었지요. 


처음 이곳으로 오게 된 날 당신이 알려준 ‘정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이곳에서는 소리를 정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요. 소리가 정적이고 정적이 소리라는 것을요. 이곳에도 자동차, 기차, 천둥이 있지만 그것들은 고요하다는 것을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소리를 정적이라고 부르지만 그것들은 아름답고 고요하다는 것을요.




내가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다되어가던 날 해안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작은 파도가 규칙적으로 밀려오고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파도 소리를 상상했지요. 물론 소리는 없었어요. 모래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떠다니는 구름을 보았어요.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사는 지구는 엄청난 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우주는 이곳과 같이 고요하다고요.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세상은 우주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외롭다는 것도요.


어느덧 밤비가 내렸어요.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빗방울이 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어요. 조용하고 검은 바다, 달도, 별도, 바람도, 소리도 없는, 불빛반이 가득한 도시, 그리고 생각났지요. 이것이 정적?


나는 말없이 일어나 밤길을 걸었어요.  그리고 도시 속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침묵 속에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침묵이 나를 환영해 주는 것 같았어요. 이곳 사람들은 소리가 필요 없는 것처럼 많은 말도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침묵은 나의 존재를 기억해 주니까요. 어느 빌라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작은 가로등 아래 서 있는 당신을 만났어요.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아니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거 같았어요. 어느새 정적 속의 침묵은 당연한 것으로 되어버렸으니까요. 당신의 질문에 답하고 싶었어요.


-두렵냐고요? 네 두려워요.


이곳이 내게 주어진 메시지에 아직 확신이 없어요. 그리고 끝없는 길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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