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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떡꿀떡 Apr 17. 2022

잘 키울 자신

   나는 보통  쓰는 일을 제하고서는 어지간한 일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양심적으로 일하려는 마음으로 임하다보니 결국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맡은  일을 잘해내게 되는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육아도 그랬다. 이혼을 하고 타지에서 혼자 키워도 에이 내가 어떻게든 애 하나 못키우랴 싶었다.


  그런데 어쩌면 잘 안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마음이 요즈음 밤마다 나를 엄습해온다. 양육비를 못 받아도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것은 나로 인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기 삶만 잘 영위해주기를 바랬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훗날에 아이가 아빠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십대 청소년기가 되면 멀쩡하게 아이를 만나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역시 나만의 헛된 망상이었던지. 재혼한 여자도 애 데리고 도망간 듯 했고, 온 몸을 문신으로 뒤덮은 채 랩퍼가 되겠다면서 온갖 외국어로 욕설을 퍼부으며 영상을 수시로 찍어올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감만 갑절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 아이의 몸 안에 있는 유전자가 바로 저런 모습이구나 하면서.


  2학년이 된 아이는 여전히 6개월이 넘도록 맞는 약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틱이 생겨 눈을 수시로 깜빡거려댄다. 학교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가 계속 걸려왔는데 스케일이 1학년과는 또 다르다. 한달 만에 뵌 의사 선생님도 약을 가급적 적게 쓰고 싶으시다면서도 오늘은 얘기를 듣더니 안되겠던지 취침 전 약을 반알 추가해주셨다.


  나는 평소에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에 쓸 돈도 없거니와 보호자가 나 하난데 건강을 해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이니까 아이를 재우고 12.5도짜리 민트 초코 맛이 난다는 소주를 한병 사왔다. 인생도 충분히 쓴데 굳이 쓴 맛을 추가 하고 싶지 않아서. 얼음을 동동 띄워 홀랑 한병을 다 마셔버리고는 세상 모르고 자는 아이를 보며 나도 눈물만 동동 띄운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미래 계획이 있다면 아이가 스무살이 되는 날. 나는 성년이 된 아이에게 향수를 선물하고, 나는 아이에게 담배를 선물 받고 싶다. 이제는 그만 책임감에서 벗어나 건강을 해쳐도 된다고. 어떠한 가난도 수치심도 고생도 감내할 각오는 먹은 지 이미 오래다. 아무런 환경도 선택도 탓하고 후회하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다. 그저 내 삶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48이 되면,, 너가 20살이 되면 그 때는 조금만이라도 나에게 수동적 자살 행위를 허락해 달라. 20살이 되면 성인이 되면 나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나 같은 것 필요 없다고 해달라. 아무 효도도 보상 심리도 원하지 않노라. 다만 결혼하지만 말고 너의 유전자를 아무에게도 물려주지 말기만 바랄 뿐이다. 나는 그때까지 너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미래를 몰라 그저 오늘 밤에 눈물로 헤아려 볼 뿐이다. 나는 정말 너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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