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몸 쓰는 일을 제하고서는 어지간한 일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양심적으로 일하려는 마음으로 임하다보니 결국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맡은 바 일을 잘해내게 되는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육아도 그랬다. 이혼을 하고 타지에서 혼자 키워도 에이 내가 어떻게든 애 하나 못키우랴 싶었다.
그런데 어쩌면 잘 안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마음이 요즈음 밤마다 나를 엄습해온다. 양육비를 못 받아도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던 것은 나로 인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기 삶만 잘 영위해주기를 바랬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훗날에 아이가 아빠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십대 청소년기가 되면 멀쩡하게 아이를 만나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역시 나만의 헛된 망상이었던지. 재혼한 여자도 애 데리고 도망간 듯 했고, 온 몸을 문신으로 뒤덮은 채 랩퍼가 되겠다면서 온갖 외국어로 욕설을 퍼부으며 영상을 수시로 찍어올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감만 갑절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 아이의 몸 안에 있는 유전자가 바로 저런 모습이구나 하면서.
2학년이 된 아이는 여전히 6개월이 넘도록 맞는 약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틱이 생겨 눈을 수시로 깜빡거려댄다. 학교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가 계속 걸려왔는데 스케일이 1학년과는 또 다르다. 한달 만에 뵌 의사 선생님도 약을 가급적 적게 쓰고 싶으시다면서도 오늘은 얘기를 듣더니 안되겠던지 취침 전 약을 반알 추가해주셨다.
나는 평소에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에 쓸 돈도 없거니와 보호자가 나 하난데 건강을 해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이니까 아이를 재우고 12.5도짜리 민트 초코 맛이 난다는 소주를 한병 사왔다. 인생도 충분히 쓴데 굳이 쓴 맛을 추가 하고 싶지 않아서. 얼음을 동동 띄워 홀랑 한병을 다 마셔버리고는 세상 모르고 자는 아이를 보며 나도 눈물만 동동 띄운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미래 계획이 있다면 아이가 스무살이 되는 날. 나는 성년이 된 아이에게 향수를 선물하고, 나는 아이에게 담배를 선물 받고 싶다. 이제는 그만 책임감에서 벗어나 건강을 해쳐도 된다고. 어떠한 가난도 수치심도 고생도 감내할 각오는 먹은 지 이미 오래다. 아무런 환경도 선택도 탓하고 후회하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다. 그저 내 삶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48이 되면,, 너가 20살이 되면 그 때는 조금만이라도 나에게 수동적 자살 행위를 허락해 달라. 20살이 되면 성인이 되면 나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나 같은 것 필요 없다고 해달라. 아무 효도도 보상 심리도 원하지 않노라. 다만 결혼하지만 말고 너의 유전자를 아무에게도 물려주지 말기만 바랄 뿐이다. 나는 그때까지 너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미래를 몰라 그저 오늘 밤에 눈물로 헤아려 볼 뿐이다. 나는 정말 너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