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해 몇 차례 글을 쓰다보니 아빠에 대해서도 써야겠다는 부담이 들었다. 안 좋았던 기억부터 쓰자니 너무 불평만 하는 것 같고 좋았던 기억부터 쓰자니 내가 겪었던 고통이 줄어들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의 오랜 고찰의 순서에 따르자면 부모님의 사랑의 진위 여부를 고민하는 나에게 아빠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은 맞다. 그래도 아빠를 떠올려보면 미약하게나마 온기가 느껴졌던 일들이 있었다.
자전거를 도둑 맞았을 때 다시 사주라고 했던 일, 느닷없이 나에게 책을 2권 선물해줬던 일, 운동회 때 좌판에서 제일 비싼 장난감을 골라 생떼를 썼을 때 사주셨던 일, 일년에 두 번 정도 나의 성적을 칭찬해주셨던 일 등…….
그런데 안 좋은 기억은 더 많이 떠올랐다. 밥 먹다가 젓가락만 떨어트려도 뺨을 맞았던 일, 신발만 비뚤어지게 벗어놓아도 혼나고 화장실에서 불을 끄지 않고 나와도 혼나고 늘 혼만 났던 일, 발가락 뼈가 부러져도 혼날까봐 한 달이 넘게 말하지 못했던 일, 사춘기 때 등산을 가기 싫어해서 등산로에서 발로 밟혔던 일, 얼마나 많이 맞고 혼났던가.
나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고 넘어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 아빠는 신체 폭력 위주로, 엄마는 언어 폭력 위주로 나에게 휘드르신 셈인데 둘 중에 어떤 상처가 마음에 더 오래 남는지 난 몸소 체험한 바 잘 알고 있다. 바로 언어 폭력이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글들에 더욱 할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신체에 가한 폭력도 쉽게 이해되고 넘어가지는 건 아니다. 나는 그래서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는가의 문제로는 두 분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두 분이 내게 주신 상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다음 기준으로 나를 사랑했는가의 여부를 그렇게나 오랫동안 곰곰히 곱씹어 봤던 것 같다.
사실적인 면보다 감정적인 면을 떠올렸을 때, 아빠는 그래도 꺼져가는 불씨만큼이라도 온기 있는 일이 떠올랐는데 엄마는 전체적으로 더욱 차가운 온도가 느껴져서 난 오히려 아빠를 이해하고 넘어가는 일이 쉬웠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겐 부모님이 나를 사랑했느냐의 문제가 목을 매고 중요했다. 사랑한 것이 맞기만 하다면 날 때린 것 쯤은 면죄부를 얼마든지 발행할 마음을 먹은 셈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신앙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 3년 정도 만에 아빠를 용서했고 엄마는 10년도 넘게 걸린 것 같다. 아니 엄마에 대한 용서가 온전치 않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브런치를 쓰며 다시금 깨달았다. 왜 두 분의 온도가 달랐는지……. 아빠에게 온기를 전달받지 못한 엄마가 더 차가울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나는 이제 앞서 쓴 글의 내용을 정정하는 바이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마음에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잘 몰랐다. 엄마는 7남매의 막내로 외할머니를 일찍 여의시고 이모들이 많이 키워주셨다고 했다. 지독하게 가난해서 외삼촌께 온 집안이 전력투구 하느라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백화점에 골프장에 일찍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 들어 집에 돈 부치기 바쁘셨다 했다. 그러다 휴가에 놀러왔다 아빠를 만나 결혼했으니 사랑을 잘 모를만도 하다.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마음에 받은 사랑보다 상처가 너무 많았다. 아빠도 6남매의 막내아들로 부모님께 많이 혼나고 맞고 자랐고 가출도 많이 하셨다 했다. 큰아버지가 잡아주시지 않았으면 고등학교도 마치시지 못할 뻔 하셨고 옆 집에 사시던 작은 할머니께서 부모님을 대신해 밥도 많이 챙겨주시고 감싸주셨다고 엄마께 전해들은 기억이 난다.
사랑을 잘 모르거나 사랑이 적고 상처가 많으신 분들 밑에서 자란 나 또한 정말 온전치 못한 인간이다. 물론 환경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했던 모든 일은 무조건 적으로 이해하고 괜찮다는 건 아니다. 그저 부모님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고 과거를 그만 곱씹고 과거는 이제 과거로 보내주어 자유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이 얼마나 철저히 환경에 지배 당하고, 자신의 환경을 뛰어넘는 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자아 성찰과 고뇌가 필요한지 모른다. 부모님이 주신 상처나 사랑에 목을 매고 따져 생각하는 내 인생의 조연에서 벗어나 부모님이 그저 환경과 배경이 되어버리고 내가 내 인생의 주연으로 서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브런치 덕분에 오늘도 주연에 한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제대로 다 정리된 글과 마음인지는 더 지켜봐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부모님은 내가 자라온 환경일 뿐이고 나에겐 앞으로 내가 살아갈 환경,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일에 목을 매고 있으니 나아진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목표가 하나 있다. 아이가 10살 쯤 되어 손이 그래도 좀 덜갈 만큼 자라고, 내가 이혼 후에 자리를 잘 잡아 부모님이 우리 모자를 봤을 때 마음에 부담이 없을 때 쯤…… 그리고 부모님이 나를 어떤 말로 찔러대더라도 내가 더 이상 분기탱천하지 않을 수 있을 때 다시 찾아뵙고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휴, 해논 것도 없이 세월만 훌쩍 흘러 이제 1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