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쭉 써 내려간 초등교사 K의 10년일기 6
6-1. 꿈 꿀 수 있는 시간
6-1. 꿈 꿀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본의 아니게 다음 해에 학교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학년 담임 및 학생자치 업무를 맡게 되었고요.
수술을 한 후 걷기 조차 힘든 상태가 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한동안 목발을 짚고 학교를 다녔고 본의 아니게 자동차도 뽑았습니다.
버스를 탈 수 없는 상태였거든요.
원래 집에서 학교까지 출근 시간이 버스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 시간동안 버스 손잡이를 잡고 목발을 짚고 서 있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좋은 분을 만나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주시겠지만, 매번 그런 호의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택시를 탄다고 생각해보니 편도로 13000 원, 왕복으로 26000 원.
매달 20일 출근 기준으로 해도 한 달에 520000원.
어휴, 이 돈이면 그냥 자동차를 뽑고 유지하겠더라구요.
원래는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싶었는데요.
상황이 이래서, 하하.
(아, 그래야 했는데. 학교 근처 집 값이 몇 배가 올랐던지….)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착한 아이들을 만난 덕에 불편한 몸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체육 시간에 조금 제가 덜 뛰어도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은 아프니까.'라며 이해했고,
제가 조금이라도 무거운 물건을 들기 위해 힘을 쓸라치면 여러 아이들이 허겁지겁 뛰어와 "저희가 할게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런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을 만난 것도 정말 복이었지요.
[2019년 3월 19일 화요일, 날씨: 맑음]
아이들과 모둠 토의를 진행했다.
학급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안건이 학급 토의로 제출되었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내내 아이들은 나를 도와주었다.
무거운 짐을 나를 때에도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섰다.
어린 3학년 아이들에게 얼마나 부탁할 수 있겠냐만,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고맙다, 얘들아.
이때 저는 모둠 토의를 하면서 모든 아이들이 회의록을 작성하고, 반드시 각자의 의견을 제출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귀담아 듣는 연습을 교육했습니다.
이를 통해 모둠 토의와 학급 토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모든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제겐 아주 큰 목표가 있었거든요.
[2019년 5월 17일 금요일, 날씨: 흐림]
학급 학생회 안건 제출을 통해 아이들로부터 5·18 민주화운동 계기교육 참여가 결정되었다.
원래는 전교학생회 업무로만 진행하려 했는데, 우리 반 아이들도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동시에 아이들과 여행 계획을 세웠다.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우리 고장을 살펴보고, 그 고장의 특징을 이해하는 활동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우리 고장의 특징을 이해해서, 우리 고장이 더 나은 곳이 되기 위해 안건을 어디로든 학급 학생회의 이름으로 제출해보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시의회나 시청도 좋고, 구청도 괜찮을 것 같다.
아직 명확한 계획이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직접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나는 그것을 동아리 예산을 활용하여 추진해주려 한다.
자신들이 만든 안건이 학급 학생회를 통해 통과되고 실현되는 경험은 아이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얻는 추진력의 발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추진력을 기점으로 우리 마을을 바꿔보는 도전을 해보고, 그것이 만약 성공한다면 살아가면서 얻을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이 계획은 대성공이었지요.
모둠 토의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단순히 '학교에서 바른 생활을 하기 위한' 닫힌 규칙을 만드는 차원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행복을 만들기 위한' 규칙들을 만들어나가는 확산적 차원으로 회의 내용을 전환하였습니다.
'복도에서 뛰지 않기', '선생님 말씀 잘듣기' 같은 진부한 규칙들을 만들던 것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친구와 산책하기 이벤트하기', '우정데이 행사하기', '학급 내 클럽 활동 만들기' 등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이 그 증거이지요.
고작(이라는 단어에 저는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3학년 아이들이 이 정도 수준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 것은 정말 대단한 발전이었습니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친구와 모둠, 학급 공동체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런 아이들의 시선 변화를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려하여 우리 마을로 또 돌려놨습니다.
우리 도시의 이곳 저곳을 탐험하고 시민의 생활을 위해 운영되는 다양한 기관을 탐방했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싶었던 축구장, 야구장도 가고 경기도 관람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 담긴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 마을을 돌아보며 고쳐야할 점들을 확인했지요.
마침 교장 선생님이 동 주민총회에서 학교 차원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전교학생회가 아니라 학급 학생회 차원에서 진행해보겠다고 했지요.
본부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나와 바로 추진했습니다.
아이들과 제가 하고 있던 활동과 너무나도 잘 맞았으니까요.
그렇게 아이들은 우리 마을에서 고쳐야 할 점 3가지를 찾아냈습니다.
'피부가 벗겨진 신호등',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안전봉', '업사이드다운, 뒤집힌 표지판'을 아이들이 시사 고발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엮어냈습니다.
물론 교사인 제가 틈틈이 다듬어주고, 영상 편집까지 맡았지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참여했고, 영상을 찍었습니다.
거기에 전교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인 리안이, 민호가 동생들의 활동을 돕겠다고 나서주어, 정말 고맙게도 영상의 퀄리티는 더욱 좋아졌습니다.
이 영상을 주민총회 안건으로 제출했고, 해당 문제들은 대부분 전달되어 시정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원래 주요 안건 중 하나였던 신호등의 벗겨진 피부는 바로 다음 해 상반기에 개선되었다고 하고요.
아마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꿈을 꾸고 이를 변화시킨 경험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전교학생회에서는 '아이들이 오고 싶어하는 전교학생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년도에는 회의 충족 기준마저 채우기 힘들었지만,
1학기 50% 정도의 참석률에서 시작하여 2학기 60~70%의 참석률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심지어는 1학기 대의원들이 전교학생회 회의를 더 오래 하고 싶다며, 한 학기까지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학생회 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개정을 요구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성취감'이 있었지요.
아이들이 통과시킨 아이디어는 바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방향으로 학교에 반영하도록 노력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학생회에서 결정한 방법이나 사안들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실 때가 많았지만, 학생회 담당 교사로서 열심히 그 의의와 의미를 설득했었지요.
다행스럽게도 학생회의 활동이 학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다른 방향과 결이 맞아 떨어질 때가 있어서, 학교 측의 우호적인 반응을 또 금방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회의 구조의 측면에서는 단순히 학급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와서 안건을 일방적으로 만드는 구조를 탈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학급학생회를 거쳐서 대의원들이 주제를 하나씩 가져오고, 대의원회에서 가장 적절한 주제를 선택한 다음, 해당 주제에 대한 안건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 영샹을 학생회에서 제작한 후 학급에 배부했습니다.
그 영상을 통해 학급 학생회에서 주제에 대한 안건을 심사숙고한 다음, 안건을 제안하여 대의원이 준비하게 했고, 대의원들이 모여 그 안건 중 하나를 채택하게 했습니다.
회의의 방향성이 위-아래-위-아래를 오고가는 방법인 셈이었지요.
이를 통해 전교의 학생들이 대의원들의 활동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단계까지 도착했습니다.
한 번은 이 학생회 활동을 이용해서 교장 선생님이 '화장을 금지하는 조항'을 유지해달라는 청탁(?)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학생회 규정에 자체적으로 화장을 금지하는 내용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뉘앙스였지요.
학생의 의지 없이 규정을 존치시키거나 만드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만, 당장 관리자와의 충돌을 만들기보다는 부드럽게, 저와 함께 하는 우리 학생회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해보기로 했습니다.
공식 안건은 아니지만 동일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의견을 확인해보았습니다.
'화장 금지 조항'에 대한 찬반 토론 영상을 제작하였고, 각 학급에 배부했습니다.
학급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합하였고, 이를 통해 대의원회에서 논의했습니다.
아이들은 '학생으로서 너무 심한 정도의 화장을 스스로 자제할 필요는 상황에 따라 있을 수 있지만, 우리 학교에서 과도한 화장이 문제가 된 적이 없음에도 이러한 조항이 강제되는 것은 반대함'이라고 뜻을 밝혔습니다.
이런 뜻을 교장실에 전달했고, 다행스럽게도 저 청탁(?)이 다시 발생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학생자치' 업무를 맡고, 이를 학급 학생회에서 연계하여 학생들 중심의 활동을 실현했던 소중한 일 년이었습니다.
다양한 것을 꿈꿀 수 있는 때이기도 했습니다.
이 업무를 만난 것도 제게 큰 복이었지요.
다시 생각해보면 진정한 '소년점프'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